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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에 젠더관점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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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전여민회 댓글 0건 조회 7,780회 작성일 11-07-0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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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에 젠더관점이 필요한 이유



                                                                                          이숙진 (대구가톨릭대학교 사회통합연구소 연구교수)

 
  최근 활발한 복지국가논쟁은 참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한국사회의 미래를 ‘복지국가’로 전망하고 다양한 수식어를 통해 그 내용과 형식을 설명하는 논의들을 보면서 새삼 복지국가에서의 한국여성의 지위를 상상해보게 된다. 복지국가가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 더 많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이는 당연히 여성의 삶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복지국가’가 되면 한국여성의 삶은 어떻게 변화될까. 현재 얘기되는 다양한 복지담론들은 여성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여성들은 어떤 나라를 “꿈꾸며” 복지국가 논의에 주목해야 할까.

  복지국가는 민주주의의 성장을 담보하므로 독재와 억압이 횡행하는 곳에서 복지국가의 깃발을 꽂을 수는 없다. 가부장적 사회는 성차별과 성불평등이라는 전제적 기제가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이므로 복지국가가 가부장적 질서와 친화적일 수 없다. 그러나 모든 복지국가들이 가부장적 성별분업을 약화시키지는 않는다. 이것은 모든 복지국가가 반드시 성평등을 진전시키는 것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구복지국가들의 유형을 성평등 관점에서 살펴보면 전통적인 성별분업(남성은 직장, 여성은 가정)을 약화시킬 수도 있으며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음을 주목하게 된다. 북유럽국가들의 경우 여성을 주부나 피부양자로 역할지우는 것이 아니라 한 가구에 2인의 소득자가 있음을 전제로 하여 각종 사회정책(사회보장, 조세, 보육, 노동 등)을 설계한다. 그러나 남유럽 혹은 영미형은 약간 혼재된 형태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여전히 남성/생계부양자, 여성/어머니, 주부 혹은 부차적 소득자에 기초한다. 예를 들어 국가의 보육서비스 확대보다는 어머니에게 양육수당 지급을 확대한 독일은 여성의 노동권 강화보다는 어머니 역할을 지원한 나라에 속한다. 스웨덴은 그 반대로 양육수당 대신 보육서비스 확대를 통해 여성의 노동시장 참가율을 높인 나라이다. 명백히 각종 성평등 지표들은 스웨덴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전통적인 성별분업을 약화시키는 사회정책은 성평등을 진전시키고 더불어 합계출산율과 여성고용율 증가의 효과를 가져온다. 때문에 독일도 최근에는 정책 방향을 전환하여 보육서비스 재정을 확대하고 여성고용을 높이는 쪽으로 재정투자를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

  이제 우리 현실에 비추어 어떤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하는가를 살펴보자. 일단 인구학적으로 우리는 전세계에서 유례없는 저출산 국가가 되었다. 신자유주의의 파고 아래 아들, 남편, 남성들의 생계벌이는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으며, 딸, 어머니, 여성들의 소득활동은 생존을 위한 필수전제가 되었다. 월123만원의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여성들, 일은 해야 하고, 또 하고 있는데 기업과 노동시장은 여성을 주부나 어머니로만 취급한다. 주부딱지, 어머니딱지 없이 능력으로 평가받고 싶은 여성들은 결혼도 출산도 거부하면서 시장의 경쟁 논리를 쫒아가게 되고, 결국 이 논리가 쌓아놓은 한국사회의 모습은 여성비정규직화, 저출산, 돌봄노동공백 등이다. 후기산업사회 혹은 탈산업사회가 새로운 사회적 위험(new social risk)이라 칭하는 요소들을 과잉배태한 한국사회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의 핵심에 여성의 역할과 지위, 평등과 차별에 관한 성평등문제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성별분업을 전제로한 가부장적 복지국가 모형은 더 이상 현실적인 정합성이 없다. 우리가 원하는 복지국가는 명백히 변화하는 여성의 역할을 인식하고, 성평등을 구조화하고 제도화하는 복지국가인 것이다.

  현재 우리의 복지국가 담론에서 젠더관점을 찾아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것은 복지의 담론화가 이제 막 시작단계이므로 옥석을 가릴만큼 풍부하고 구체적인 논의가 펼쳐지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또 한편 우려되는 지점은 우리 사회의 급격한 보수화가 여성문제에 관해 보다 치명적인 반격을 가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가 몰고온 피폐와 양극화가 여성의 삶에 미친 영향을 되짚어 보기도 전에 지난 2-3년간 불어닥친 보수의 반격으로 성평등에 대한 주장은 훨씬 두터운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 형국이다. 혹자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성차별이 있나?”고 반문하기도 한다. 지난 수십년간 여성운동의 성과로 맺은 호주제 폐지,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성매매금지 등의 법제화과정은 형식적 평등을 진전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이는 미완의 평등이며 반쪽의 평등이었다. 한부모여성가장의 생존은 여전히 절박하고, 일-가정의 양립은 수퍼맘의 초인적 능력을 요구하고, 성폭력과 성희롱은 여전히  여성들을 불안케하고 있으며, 출산권이나 성적 자기결정권의 목소리는 여성이기주의로 비판받고 있다. 여성들에게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로서의 민주주의는 아직 요원하다. 복지국가가 단지 복지정책의 나열이 아니라 국가운영전략을 이름하는 것이라면 복지국가는 이러한 여성의 삶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가부장적 복지국가에 대한 비판은 20세기 후반 이후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논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핵심적인 통찰을 제공해주었다. 우리가 직면하는 사회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필요로 하고 그것은 분명히 젠더관점 즉 성평등의 가치지향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주로 여성이 담당하는 무임의 댓가없는 돌봄노동을 외면하는 남성중심성, 돌봄노동은 숙련과 전문성이 요구되지 않아 나쁜 일자리일 수 밖에 없다는 생산중심성, 그리고 극단적으로 여성은 출산과 양육을 위해 경제활동을 중단할 수 밖에 없다는 가부장적 성별고정관념이 팽배하는 한 복지국가는 성공할 수 없다.
 
  굳이 저명한 학자들의 언급을 거명하지 않더라도 복지국가 논의가 젠더관점에 기초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앞으로 논의되는 복지국가 논쟁은 반드시 ‘성평등 복지국가’이어야 하며, 여성들은 성평등과 민주주의의 가치가 실현되는 복지국가로의 길을 꿈꾸고 있다. 정치권, 학계 그리고 시민사회 역시 이 길을 함께 가야 하며 이는 시대사적 요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