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못을 위한 여성인권 가이드북] 본회 이은주 활동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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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전여민회 댓글 0건 조회 1,548회 작성일 21-03-26 14:01본문
[편집자주] 빅웨이브x휴먼라이브러리 프로젝트팀 [휴먼웨이브]에서 발행한 <알못을 위한 여성인권 가이드북>에 실린 본회 이은주 활동가 인터뷰 내용을 발췌했습니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온 불편함이 한번에 정리된 것이 페미니즘의 정의였어요. 그래서 ‘이게 내가 해야 하는 거다’라고 알게 되었고, 여성운동을 하고 싶어서 여성단체를 찾아 여민회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Q1) 안녕하세요 이은주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대전에서 노래하는 이기수씨와 7개월 된 꼬마인간을 돌보고 있는 이은주입니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탐구하는 중이에요.
Q2) 현재 속해있는 ‘대전여민회’는 어떤 단체인가요?
A) 대전여민회는 1987년 대전지역 기독교 여성, 민주화 운동 여성, 충남대학교 여성학 동아리를 주축으로 창립되었어요. 이후 가정폭력 방지법, 호주제 폐지, 성폭력특별법, 성매매 방지법등 여성문제들이 법률적인 제도와 정책들로 정비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었던 역사가 있는 단체고요. 지금도 꾸준히 성 평등 문화 확산 운동, 여성 노동권 강화 운동, 섹슈얼리티 운동 등을 하고 있어요.
Q3) 여민회의 주된 활동 이슈는 무엇일까요?
여민회의 운동방향이나 사업에 대한 설명은 박이경수 국장님께서 잘 설명해 주셨을 테니까요, 사업이나 운동에 대한 설명보다 제가 느꼈던 여민회 운동방향의 흐름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어요. 여민회는 단체 안에 속해있던 활동가들의 관심사나 시대의 요구에 따라, 그 때 그 때 활동 이슈들이 변해왔던 것 같아요. 그. 때. 누. 가. 있었는가에 따라 활동의 중심이 달라졌어요.
제가 처음 여민회에 들어왔을 때는 활동가들이 한부모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때는 한부모 운동이 여민회 활동에 중심이었어요. 지금 활동가들은 여성 노동권 강화 운동과 성평등 문화 확산운동, 섹슈얼리티 운동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지금은 그 운동을 중심으로 여민회가 돌아가고 있고요. 10년 뒤 여민회가 어떤 활동을 할지는 그 때, 어떤 활동가들이, 어디에 관심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예요.
Q4) 어떻게 여민회에 들어가게 되었고 페미니스트가 되셨나요?
우선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를 말씀드릴게요. 저는 기독교 베이스가 있는 사람이어서 사회참여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졸업과 동시에 공무원시험을 치르기 위해 노량진으로 갔는데요, 공부는 하지 않고 사회운동 현장에 참여했었어요. 당시 알게 되었던 사회운동가 한 분이 저에게 여성학이 잘 맞을 거 같다고 추천을 해주셨어요.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책이 당시 유행했었는데 읽으면서 ‘이거 내 얘기잖아!’ 하는 생각을 했어요. 내 삶을 누군가 내 대신 설명해준다는 느낌에 충격을 받았어요.
제 삶의 자취를 살펴보면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질책 받는 어머니가 떠올랐어요. 교회에 열심히 다녔는데 여성은 순종적이고 자애로운 여성상을 강요받는데 저는 그런 여성상과 거리가 멀어서 괴리감을 느꼈어요. 나는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사람인데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여성스러움을 강요당했을 때 자괴감도 컸고, 나를 연기하면서 내가 나 자신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 재학 중에도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익이다’ 등의 말을 직접적으로 들은 세대였거든요.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온 불편함이 한번에 정리된 것이 페미니즘의 정의였어요. 그래서 ‘이게 내가 해야 하는 거다’라고 알게 되었고, 여성운동을 하고 싶어서 여성단체를 찾아 여민회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Q5) 대전여민회 전 사무국장님이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민회에서 사무국장 직책을 맡게 되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지금은 여성 운동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당시 여민회에는 사회복지사 같은 개념으로 근무를 하는 분들이 더 많았어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경우보다 그냥 직장으로 다녔던 거죠. 그래서 비교적 여성주의에 관심이 많은 제가 자연스럽게 사무국장 직책을 맡게 되었어요. 당시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부족해서 힘든 점이 많았지만, 책임감을 느끼고 활동했어요.
Q6) 사무국장님 외에는 전부 평회원인가요?
지금 여민회는 사무국장 외 모두 활동가에요. 임금체계에서만 연차와 직책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몇몇 있고요. 사무국장에게 집중되는 책임과 권한이 너무 무거워서 나누려하고 있어요.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 당연한 전제지만 업무와 관련해 기능적으로 1-2년 정도 스스로 훈련하는 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책임이 너무 커져버리면 활동가들 스스로 부담스러워 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3년차 이상, 제비뽑기로 돌아가면서 사무국장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Q7) 오마이뉴스에서 사무국장님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여성의 노동 조건을 개선할 수 있을까요?
그 때가 2017년쯤인 것 같은데요. 프로젝트 사업 때문에 경력단절여성들을 인터뷰 하고 다녔어요. 20명의 여성들을 만났었는데 고용형태나 사업장규모가 모두 달랐거든요. 그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건, 조건에 따라 여성들의 일 지속 경험이 달라진다는 거였어요.
5인 미만 사업장, 비정규직, 단시간 노동, 저 임금, 비숙련 노동일수록 노동시장에 진입과 퇴출을 반복하게 되거든요. 언제든지 스페어처럼 대체 가능한 일자리에는 노동을 지속할 동기부여가 되지 않잖아요. 임금이 높다던지, 고용이 안정되었다던지, 일 지속의 동기부여가 가능한 여성들은 노동 지속이 가능하더라고요. 여성들이 노동을 지속하며 숙련자, 기술자, 상급자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고민과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8) 지금까지 여민회에서 활동한 과정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활동은 무엇인가요?
*슬럿 워크(*여성의 입을 권리를 포함한 자기 결정권을 내세우며 캐나다에서 시작된 여성 운동)를 진행했을 때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같은 문구로 대전에서 거리시위를 했었어요.
개인적으로도 해방감을 느낀 활동이었어요. 옷을 입을 때 노출의 정도와는 관계없이 내가 예쁘다고 느끼는 옷을 입고 싶은 욕구와 타인이 보는 시선 사이에 경계를 항상 고민해야 했거든요. 나를 검열했던 지난날이 떠오르면서 그냥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고 서로 신경 안 쓰면 좋겠다, 타인의 옷차림에 대한 평가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들을 했죠.
Q9) 제일 슬펐던 때도 있으신가요?
좋지 못한 일들을 알리는 과정은 늘 마음이 아프죠. 피해자의 아픔, 죽음 등을 마주했을 때는 저도 참 슬펐어요. 그들을 운동의 수단으로 삼지 않으려고 늘 고민해요.
Q10) 최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여성인권 이슈가 있을까요?
활동가의 관심이 인권운동의 방향이 되고 그 관심은 개인의 경험에서 나와요. 저는 육아와 동시에 일을 병행하고 있으니 보육과 일 지속에 대한 관심이 제일 많습니다. 반성매매운동이나 낙태죄 폐지 활동에도 관심이 있어요.
Q11) 30대 페미니스트로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아까 활동가의 관심은 자기 경험에서 나온다고 했잖아요, 저는 아이가 7개월인데요. 일을 시작하겠다고 결정 했을 때, 일을 하는 동안 아이를 누구에게, 혹은 어디에 맡길 지를 가장 먼저 고민 하게 되더라고요. 어린이집에 가면 단체생활을 해야 하니까... 코로나나 질병에 노출 될 위험이 있어 어린이집 보내기가 망설여졌고요.
알아보니 아이 돌봄 서비스 같은 정부 지원 제도가 있더군요. 소득에 따라 가형, 나형으로 분류 되어요. 가형과 나형은 정부지원금이 두 배가 차이 나는데요. 가형이 되려면 부부합산소득이 중위소득 75%이하가 되어야 하더라고요. 그런데 실제로는 부부가 맞벌이를 해서 중위소득 75%를 넘기지 않을 수가 없거든요. 제도가 있어도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는 어려웠어요. 화가 나더라고요. 결국 육아하는 여성은 단시간 근로를 하거나 일하지 말라는 건가 싶고. 보육공백에 대한 디테일과 실질적인 정책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12) 페미니스트로서 개인적으로 실천중인 젠더 이슈가 있을까요?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평등을 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먼저는 가정에서 실천해보려고 노력중이고요. 남편과 자주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젠더이슈와 관련해 토론도 나누고요. 딸에게도 그런 교육을 잘 하고 싶어요.
Q13) 연령대별 페미니스트 인터뷰이를 찾는 과정에서 30대 페미니스트를 찾는데 시간이 가장 많이 걸렸어요. 왜 30대 페미니스트를 찾기 어려운지 생각을 나눌 수 있을까요?
사실 제 주변에는 30대 페미니스트들이 많거든요. 왜 이런 질문이 나오게 되었을까 먼저 궁금했어요. 저도 잘 몰라서 활동가들이랑 잠깐 얘기를 나눠봤는데요. 10대 20 대에 비해 온라인 플랫폼을 다양하게 이용하지 않는 차이도 있지 않을까 하는 얘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사실 저는 트위터 빼고 다 하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페이스북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올렸었는데 직책을 맡게 되면서 나를 너무 드러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또 실제로 30대는 육아를 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SNS를 이용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요. 생활이 바빠서, 직장 내 위치가 있어서, 다양한 이유로 드러내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만 30대 페미니스트, 우리도 존재 합니다.
Q14) 여성운동의 최종목표는 무엇일까요?
최종 종착지가 있을까요? 여성운동의 본질은 힘의 차이, 평등을 이야기 하는 운동이잖아요, 힘의 차이가 세상의 끝에는 없어질까? 의문이에요. 저는 더 미시적인 이슈들로 발전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완벽한 평등은 도래할 수 없죠. 지향으로 두고 계속 나아가는 거니까요.
Q15) 곧 2020년이 끝나고 새해가 다가옵니다. 이은주님의 내년 목표는 무엇인가요?
낙태죄 전면폐지를 갈망합니다. 여성운동에 참여했을 때부터 낙태죄 폐지 문제가 제일 시급하다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빠르게 이슈화되어 놀라기도 했지만, 기회가 왔을 때 이 문제를 제대로 짚고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Q16) 이 인터뷰를 읽을 페미니스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강요할 수는 없지만 지금 있는 곳에서 잘 버텨달라고 응원하고 싶네요. 짧지만 제 경험상 버텨주는 사람이 제일 고맙고 힘이 되더라고요. 버텨온 힘들이 쌓여서 변화를 불러 오기도 하고요. 그리고 내 편을 확장해 나가는 방식으로 운동을 하는 게 덜 지치는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기다려주는 시간도 필요하고요. 시대의 흐름은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기에 언젠가는 변하거든요. 가르치려 해서는 듣지를 않죠. 스스로 알게 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