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페미니스트 연구-활동가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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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전여민회 댓글 0건 조회 1,383회 작성일 21-05-10 17:04본문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페미니스트 연구-활동가 선언
“페미니즘은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함께 전진합니다.”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최초의 기본법’인 차별금지법은 아직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정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용, 교육, 제반 서비스 이용에서 차별받거나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평등의 원칙은 차별금지 대상에서 ‘성적 지향’을 삭제해야 한다는 일부 기독교 단체의 주장이나 학력 및 병력, 출신 국가, 가족 형태 등에 대한 차별금지가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저해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재계의 반대 등으로 인해 14년 동안 부침을 겪어왔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난항을 겪는 동안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는 오히려 확산되었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려는 여성들은 ‘역차별’을 조장하는 세력으로, 퀴어문화축제는 ‘동성애를 조장’하는 행사로 호도되었습니다. 장애인 학교 설립 계획은 주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정책이라는 오명을 쓰고 저지되었으며, 故 변희수 하사는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심신장애’ 판정을 받고 강제전역을 당했고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법제도가 부재한 상황에서 이주민에 대한 모욕과 폭력도 증폭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의 삶을 두려움 없이 살아갈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특정 집단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물질적 빈곤, 문화적 무시, 정치적 무권력의 상태에 내몰리고, 마땅한 시민적 권리들로부터 총체적으로 배제당하고 있습니다. 차별은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생존 가능성마저 앗아갑니다.
이에 페미니스트 연구-활동가들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즉각적인 제정을 촉구합니다. 2007년 법무부가 7개의 차별금지사유가 삭제된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한 이후, 국회에서는 총 6회의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었지만 모두 폐기되거나 철회되었습니다. 국가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로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미루어오는 동안, 사회적 약자의 삶은 계속해서 무너져 내렸습니다. ‘사회적 합의’가 민주적 절차의 과정을 뜻하는 말이 아닌, 퇴행과 지배구조 고착화를 위한 핑계의 말로 전락한 것입니다.
우리는 소수자의 권리 인정이 선제적으로 선언될 때 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 사회가 가능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성의 참정권을 포함한 권리는 자연적으로 부여된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반대를 무릅쓰고 선언하고 쟁취한 것이며, 이를 통해 전체 사회의 인식이 변화한 것입니다. 지난 2020년 7월 한국여성학회가 국회에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을 촉구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의견표명에 적극적인 환영과 지지를 보낸 것도 차별금지법이 상호존중과 평등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전진시키는 전제이자 지지대여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페미니스트 연구-활동가들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함을 강력히 주장합니다. 개별적 차별금지법은 여성들의 상황을 개선하는데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성은 계급, 인종, 성적 지향, 장애 등의 사회적 위치에 놓인 존재들이며, 이에 여성의 권리는 다양한 차원의 권리를 포괄적이고 교차적으로 사고하면서 확장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얼마 전 작고하신 故 이효재 선생님께서는 일찍이 한국 근대사에서 전개된 페미니즘이 반봉건, 반식민, 반독재, 반자본 등의 모순과 교차하는 상황에서 전개되었음을 지적하셨으며, ‘분단국가에서의 여성’이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가를 평생 고민하셨습니다.
페미니스트 연구-활동가들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를 위한 선언은 바로 우리의 존재가 ‘함께 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나의 생존은 우리가 서로에게 응답할 때 가능하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배제와 차별은 인간이 상호 도움을 주는 존재이며 공동체적 평등을 지향하는 존재라는 점을 탈각시킴으로써 민주주의를 후퇴시킵니다. 우리는 포괄적 차별금지를 통한 확장적 민주주의만이 현재의 혐오 정치와 갈등을 줄여나갈 수 있는 길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페미니즘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없이 전진할 수 없습니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자 합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나중’이 아니라 바로 ‘지금’ 제정되어야 합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미완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공동체의 염원이자 혐오 정치를 끝내는 유일한 공동체적 해법입니다. 페미니즘은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함께 전진합니다!
2021년 5월 10일
페미니스트 연구-활동가(개인 및 단체) 총 50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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