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드랑이털의 ‘독립 시위’ “니가 뭔데 밀라 말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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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전여민회 댓글 0건 조회 8,063회 작성일 14-07-30 09:26본문
겨드랑이 털, 독립만만세!
‘털 없는 몸이 아름답다’ 기준에 반기 든 겨털 시위대
내 몸의 일부인 털을 인정하고 함께하고 공개하기
7월4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 특이한 피켓이 등장했다. “제모 안 해도 나는 당당해” “언제부터 겨털 제모가 필수였나요?” “겨털 독립 만세” “겨털 길러 서예하자(나 지금 궁서체임)”.
피켓을 든 건 열두 명의 여성들.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만난 이들은 근엄한 이순신 동상 앞에서 한 이동통신사 광고 CM송에 가사를 붙여 노래를 불렀다. “내 몸인데 내 털인데 니가 뭔데 밀라 말라. 제모 광고 작작 해요 누굴 위한 제모인가. 겨드랑이 그만 봐요 안 밀어도 난 당당해 그대로도 괜찮다! 겨털 독립 만만세.” 이들은 세종대왕 동상으로 이동해 탑돌이하듯 동상 둘레를 몇 바퀴 돌고 세종문화회관 돌계단에서 다양한 포즈로 (주로 팔을 번쩍 들고) 사진을 찍었다. 퇴근하는 직장인들 사이를 가로질러 시청광장까지 행진한 ‘겨털 시위대’는 시청광장 잔디밭에 드러누워 지는 여름 햇살 아래 겨드랑이 털을 뽐낸 뒤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천부겨털’을 외쳤다.
누굴 위한 제모인가
‘겨털 시위대’가 서로 만나게 된 페이스북 페이지는 지난 4월9일 만들어진 ‘이것또시위’(www.facebook.com/trivialdemo)라는 모임이다. “하찮은 것들의 사소한 시위를 시작합니다. ‘이것도 시위냐?’ 싶은 주제로도 정말로 시위합니다. ‘이것들 또 시위하네?’ 싶을 정도로 자주 합니다.” ‘이것또시위’가 자신들을 설명하는 말이다. 축의금 없는 결혼식, 브래지어 자르기, ‘계단을 오를 때 가방으로 뒤를 가린다’는 성폭력 예방규칙을 적은 서울 지하철경찰대의 무개념 스티커 떼기 등 일상의 문제에 주목한다. 온라인 속 ‘이것또시위’가 오프라인에서 한 첫 시위가 바로 겨드랑이 털의 존재를 드러내자는 ‘내 겨드랑이에 붓 있다’였다.
‘내 겨드랑이에 붓 있다’ 시위는 겨드랑이 털을 기르자는 주장은 아니다. 이들은 다만 겨드랑이 털에 대한 혐오를 거부한다. “같이 가자”는 친구 전화를 받고 ‘겨털 시위’에 참여한 직장인 혜원(31)은 겨울에는 제모를 자주 하지 않지만 팔이 드러나는 여름에는 제모를 한다. 시선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는 겨드랑이 털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보고 매끈한 몸이 아름답다는 기준을 강제로 들이대는 사회적 강요가 불편하다. 알지만, 겨드랑이 털을 불편해하는 사회적 시선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겨털을 품고 다니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
혜원에게 ‘겨털 시위’에 가자고 동 뜬 건 일본인 유학생 ‘하마무’(별칭)다. 하마무는 “일본에서는 제모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억압이 한국보다 훨씬 심하다. 한국에서는 다리나 팔 등 다른 부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인데 일본에서는 전신이 매끈해야 한다. 그 억압은 결국 면도기 회사 같은 자본이 만들어낸 게 아닌가 생각한다. 수치심까지 소비사회가 강요하는 상황에 저항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언제부터 겨드랑이를 매끈하게 관리해온 걸까. <털-수염과 머리카락을 중심으로 본 체모의 문화사>에서 저자 다니엘라 마우어와 클라우스 마이어는 기원전 500년께부터 ‘체모 면도’가 행해졌다고 쓴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저서 <사랑의 기교>에 종아리 털을 깎는 것은 필수이며 제모를 위한 보조용품으로 농도가 치명적인 다양한 크림이 사용됐다는 내용이 있다. 근대 초기까지의 예술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의 몸에 털은 한 오라기도 없다. 20세기 초 에곤 실레와 구스타프 클림트가 털의 물꼬를 텄지만 털 없는 여체에 대한 강박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자본의 영역으로 옮아가 더욱 공고해졌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여성해방 물결과 함께 여성의 몸을 죄었던 길고 거추장스러운 드레스 대신 짧고 간편한 옷들이 등장하자 여성지 칼럼니스트들은 겨드랑이와 팔뚝의 털을 면도해야 한다고 권하기 시작했다. 이어 당시 미국의 화장품 산업은 ‘여성과 위생’을 내세우는 광고를 통해 겨드랑이 털을 박테리아의 온상으로 낙인찍는다. 질레트는 1915년 드레스를 입은 모델이 머리 위로 팔을 들어올려 털을 제거한 매끈한 겨드랑이를 보여주는 모습의 광고를 통해 ‘털 없는 겨드랑이’에 대한 미적 선호를 만들었고, 여성지 <하퍼스 바자>에서 4년 동안 끈질기게 겨드랑이 털 제모를 유도하는 광고를 해서 ‘털 없는 몸이 아름답다’는 절대 기준을 만들었다.
서구 문화가 깊이 침투하지 않았던 1970~80년대 한국 사회에서 20~30대 여성들은 굳이 제모를 하지 않아도 됐다. 주부 성정숙(51)씨는 태어나서 한 번도 제모한 적이 없다. “눈썹 없는 사람을 환자로 생각하잖아. 과거에는 겨드랑이 털이 그런 존재였어.” 성씨의 증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이제 목욕탕에 가면 털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나도 깎아야 하나 싶다니까.”
“사람 많은 곳에 갈 땐 ‘시선’이 불편해서 밀어요”
불과 30여 년 만에 한국 여성들에게 제모는 필수가 됐다. 이제 좋든 싫든 한다. ‘겨드랑이 털은 자연스러운 몸의 일부’임을 잘 알고 있는 대학생 정아무개(25)씨는 대학에 입학하던 해 10여만원을 주고 겨드랑이 털 영구 제모를 했다. 정씨는 “스킨스쿠버가 취미인데 스킨스쿠버 할 때마다 겨드랑이에 신경 쓰기 싫었다”고 말했다. 한 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강사로 일하는 김지연(27)씨는 2009년 여름 ‘제모 안 하기’를 실천해봤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는 해방감을 느끼고 통쾌했지만 버스 같은 공공장소에서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힘들었다. 버스에서 손잡이를 잡았는데 앉아 있던 남자가 올려다보고 놀라서 다시 한번 쳐다보는 모습에 자신감을 잃었다. 그의 눈빛에서 ‘이런 여자가 다 있냐. 칠칠치 못하군’이라며 혀 차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뒤 김씨는 다시 제모의 세계에 돌입했다. “자세가 굴욕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시선의 공포를 이기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새 ‘제모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김씨는 “어학당 중국인 학생들이 보통 한국 유행의 최첨단을 달려요. 최근 민소매 옷을 입은 그 친구에게서 겨드랑이 털을 봤어요.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내가 당황하고 있는 거예요. 그 모습에 내가 더 놀랐죠”라고 말했다.
‘이것또시위’에서 시위를 기획한 주해은(31)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역시 털을 감추는 것을 공공장소에서의 예의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타협해왔다. 주씨는 여름에 민소매를 입으려다 겨드랑이 털을 밀지 않은 게 기억나서 다시 옷을 갈아입은 게 여러 차례였다. “수영장이나 헬스장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 갈 때면 ‘시선’이 불편해서 밀어요. 제모가 여성에게 더욱 강요되는 사회적 맥락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불쾌감이나 나쁜 인상을 줄 것 같아서요.” 시선이 불편해 밀긴 하지만, 겨드랑이 털 제모는 아프다. ‘이것또시위’ 페이스북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른 이지영(25)씨는 “면도기 사용이 익숙지 않아서 겨드랑이 털을 밀 때면 살을 베는 적도 많다”고 말했다. 제모 제품의 부작용과 제모 시술의 비용에 불만을 갖고 있는 여성도 많다. 아픔은 제모를 일상적으로 하지 않는 남성이 더 민감하게 느끼기도 한다. 몸에 털이 많은 편인 김동환(23)씨는 체대생이다. 민소매 유니폼 때문에 얼마 전에 처음 겨드랑이 털 제모를 한 뒤 이제는 절대 안 한다. “제모하고 났더니 너무 따가운 거예요. 다시 자라는 털이 굵어져서인지 가만히 있어도 따가워서 이제 ‘밀지 말라’고 얘기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2차 겨털 시위 땐 배드민턴 대회를
이번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의 겨드랑이 털 관리 방식은 다양했다. 시위를 위해 겨드랑이 털을 기른 사람도 있었고, 제모를 한 뒤 인공 털을 붙이고 온 사람도 있었고, 원래 제모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이번 시위를 통해 얻은 건 겨드랑이 털에 대한 다른 시선도 가능하다는 용기였다. 일본인 하마무는 “나처럼 제모를 억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위안이 되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주해은씨는 “혼자서는 못할 것 같았는데 사람들이 많아지니 안 밀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즘은 제모를 하지 않고 자라는 내 겨드랑이 털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혜원은 “내가 하고 싶은 얘기, 그렇지만 남들이 금기시하는 이야기를 거리에서 즐겁게 말하고 있다는 생각에 속시원했다”고 말했다.
겨드랑이 털에 대한 다른 생각은 조금씩 지분을 넓히고 있다. 회사원 지선(24)은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겨드랑이 털을 보이면서 찍은 사진을 친한 지인들만 볼 수 있는 ‘부분 공개’ 상태로 게시했다. 지선은 “고등학교 성교육 시간에 나의 매력으로 ‘털이 없는 몸’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털이 원래 없어서 팔다리 제모를 한 번도 안 했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겨드랑이 털이 나면서 자연스러운 겨드랑이 털을 왜 잘라야 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결국 털 없는 매끈함을 아름답다고 생각한 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에 저항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선은 이번 여름은 겨드랑이 털을 밀지 않고 보낼 계획이란다. ‘부분 공개’에서 ‘전체 공개’로 용기를 내고 있는 셈이다.
겨털 시위대는 시위하는 1시간 동안 웃고 떠들며 겨드랑이 털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이들은 “다음에는 겨드랑이 털을 기르면서 관찰일기를 쓰자” “겨드랑이 털을 기른 채 배드민턴 대회를 열자”고 말했다. ‘이번엔 겨드랑이 털이 너무 짧았다’는 아쉬움에 2차 겨드랑이 털 시위를 하자는 말도 나왔다. 얼마 전 영국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이스라엘 출신 사진가 벤 호퍼는 2007년 작업한 자신의 프로젝트 ‘내추럴 뷰티’를 공개했다. 다양한 여성들이 겨드랑이 털을 최대한 드러내는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에 대해 사람들은 낯설지만 개성 있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내렸다. ‘겨털 시위’ 기획자 주해은씨는 시위 포스터를 만들면서 겨드랑이 털을 제모하지 않은 소피아 로렌의 사진을 자주 봤다.
내 몸을 긍정하는 태도
처음엔 낯설었지만 보면 볼수록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란 생각이 들었다. 벤 호퍼는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에게 겨드랑이 털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간과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작업했다고 말했다. 겨드랑이 털은 우리 몸의 일부다. 주씨는 말한다. “겨드랑이 털을 인정하는 건 내 몸을 긍정하는 태도, 만들어진 시선에 굴하지 않겠다는 자신감의 다른 이름이다.”
서지원 인턴기자 iddgee@gmail.com·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털 없는 몸이 아름답다’ 기준에 반기 든 겨털 시위대
내 몸의 일부인 털을 인정하고 함께하고 공개하기
7월4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 특이한 피켓이 등장했다. “제모 안 해도 나는 당당해” “언제부터 겨털 제모가 필수였나요?” “겨털 독립 만세” “겨털 길러 서예하자(나 지금 궁서체임)”.
피켓을 든 건 열두 명의 여성들.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만난 이들은 근엄한 이순신 동상 앞에서 한 이동통신사 광고 CM송에 가사를 붙여 노래를 불렀다. “내 몸인데 내 털인데 니가 뭔데 밀라 말라. 제모 광고 작작 해요 누굴 위한 제모인가. 겨드랑이 그만 봐요 안 밀어도 난 당당해 그대로도 괜찮다! 겨털 독립 만만세.” 이들은 세종대왕 동상으로 이동해 탑돌이하듯 동상 둘레를 몇 바퀴 돌고 세종문화회관 돌계단에서 다양한 포즈로 (주로 팔을 번쩍 들고) 사진을 찍었다. 퇴근하는 직장인들 사이를 가로질러 시청광장까지 행진한 ‘겨털 시위대’는 시청광장 잔디밭에 드러누워 지는 여름 햇살 아래 겨드랑이 털을 뽐낸 뒤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천부겨털’을 외쳤다.
누굴 위한 제모인가
‘겨털 시위대’가 서로 만나게 된 페이스북 페이지는 지난 4월9일 만들어진 ‘이것또시위’(www.facebook.com/trivialdemo)라는 모임이다. “하찮은 것들의 사소한 시위를 시작합니다. ‘이것도 시위냐?’ 싶은 주제로도 정말로 시위합니다. ‘이것들 또 시위하네?’ 싶을 정도로 자주 합니다.” ‘이것또시위’가 자신들을 설명하는 말이다. 축의금 없는 결혼식, 브래지어 자르기, ‘계단을 오를 때 가방으로 뒤를 가린다’는 성폭력 예방규칙을 적은 서울 지하철경찰대의 무개념 스티커 떼기 등 일상의 문제에 주목한다. 온라인 속 ‘이것또시위’가 오프라인에서 한 첫 시위가 바로 겨드랑이 털의 존재를 드러내자는 ‘내 겨드랑이에 붓 있다’였다.
‘내 겨드랑이에 붓 있다’ 시위는 겨드랑이 털을 기르자는 주장은 아니다. 이들은 다만 겨드랑이 털에 대한 혐오를 거부한다. “같이 가자”는 친구 전화를 받고 ‘겨털 시위’에 참여한 직장인 혜원(31)은 겨울에는 제모를 자주 하지 않지만 팔이 드러나는 여름에는 제모를 한다. 시선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는 겨드랑이 털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보고 매끈한 몸이 아름답다는 기준을 강제로 들이대는 사회적 강요가 불편하다. 알지만, 겨드랑이 털을 불편해하는 사회적 시선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겨털을 품고 다니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
혜원에게 ‘겨털 시위’에 가자고 동 뜬 건 일본인 유학생 ‘하마무’(별칭)다. 하마무는 “일본에서는 제모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억압이 한국보다 훨씬 심하다. 한국에서는 다리나 팔 등 다른 부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인데 일본에서는 전신이 매끈해야 한다. 그 억압은 결국 면도기 회사 같은 자본이 만들어낸 게 아닌가 생각한다. 수치심까지 소비사회가 강요하는 상황에 저항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언제부터 겨드랑이를 매끈하게 관리해온 걸까. <털-수염과 머리카락을 중심으로 본 체모의 문화사>에서 저자 다니엘라 마우어와 클라우스 마이어는 기원전 500년께부터 ‘체모 면도’가 행해졌다고 쓴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저서 <사랑의 기교>에 종아리 털을 깎는 것은 필수이며 제모를 위한 보조용품으로 농도가 치명적인 다양한 크림이 사용됐다는 내용이 있다. 근대 초기까지의 예술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의 몸에 털은 한 오라기도 없다. 20세기 초 에곤 실레와 구스타프 클림트가 털의 물꼬를 텄지만 털 없는 여체에 대한 강박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자본의 영역으로 옮아가 더욱 공고해졌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여성해방 물결과 함께 여성의 몸을 죄었던 길고 거추장스러운 드레스 대신 짧고 간편한 옷들이 등장하자 여성지 칼럼니스트들은 겨드랑이와 팔뚝의 털을 면도해야 한다고 권하기 시작했다. 이어 당시 미국의 화장품 산업은 ‘여성과 위생’을 내세우는 광고를 통해 겨드랑이 털을 박테리아의 온상으로 낙인찍는다. 질레트는 1915년 드레스를 입은 모델이 머리 위로 팔을 들어올려 털을 제거한 매끈한 겨드랑이를 보여주는 모습의 광고를 통해 ‘털 없는 겨드랑이’에 대한 미적 선호를 만들었고, 여성지 <하퍼스 바자>에서 4년 동안 끈질기게 겨드랑이 털 제모를 유도하는 광고를 해서 ‘털 없는 몸이 아름답다’는 절대 기준을 만들었다.
서구 문화가 깊이 침투하지 않았던 1970~80년대 한국 사회에서 20~30대 여성들은 굳이 제모를 하지 않아도 됐다. 주부 성정숙(51)씨는 태어나서 한 번도 제모한 적이 없다. “눈썹 없는 사람을 환자로 생각하잖아. 과거에는 겨드랑이 털이 그런 존재였어.” 성씨의 증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이제 목욕탕에 가면 털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나도 깎아야 하나 싶다니까.”
“사람 많은 곳에 갈 땐 ‘시선’이 불편해서 밀어요”
불과 30여 년 만에 한국 여성들에게 제모는 필수가 됐다. 이제 좋든 싫든 한다. ‘겨드랑이 털은 자연스러운 몸의 일부’임을 잘 알고 있는 대학생 정아무개(25)씨는 대학에 입학하던 해 10여만원을 주고 겨드랑이 털 영구 제모를 했다. 정씨는 “스킨스쿠버가 취미인데 스킨스쿠버 할 때마다 겨드랑이에 신경 쓰기 싫었다”고 말했다. 한 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강사로 일하는 김지연(27)씨는 2009년 여름 ‘제모 안 하기’를 실천해봤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는 해방감을 느끼고 통쾌했지만 버스 같은 공공장소에서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힘들었다. 버스에서 손잡이를 잡았는데 앉아 있던 남자가 올려다보고 놀라서 다시 한번 쳐다보는 모습에 자신감을 잃었다. 그의 눈빛에서 ‘이런 여자가 다 있냐. 칠칠치 못하군’이라며 혀 차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뒤 김씨는 다시 제모의 세계에 돌입했다. “자세가 굴욕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시선의 공포를 이기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새 ‘제모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김씨는 “어학당 중국인 학생들이 보통 한국 유행의 최첨단을 달려요. 최근 민소매 옷을 입은 그 친구에게서 겨드랑이 털을 봤어요.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내가 당황하고 있는 거예요. 그 모습에 내가 더 놀랐죠”라고 말했다.
‘이것또시위’에서 시위를 기획한 주해은(31)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역시 털을 감추는 것을 공공장소에서의 예의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타협해왔다. 주씨는 여름에 민소매를 입으려다 겨드랑이 털을 밀지 않은 게 기억나서 다시 옷을 갈아입은 게 여러 차례였다. “수영장이나 헬스장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 갈 때면 ‘시선’이 불편해서 밀어요. 제모가 여성에게 더욱 강요되는 사회적 맥락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불쾌감이나 나쁜 인상을 줄 것 같아서요.” 시선이 불편해 밀긴 하지만, 겨드랑이 털 제모는 아프다. ‘이것또시위’ 페이스북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른 이지영(25)씨는 “면도기 사용이 익숙지 않아서 겨드랑이 털을 밀 때면 살을 베는 적도 많다”고 말했다. 제모 제품의 부작용과 제모 시술의 비용에 불만을 갖고 있는 여성도 많다. 아픔은 제모를 일상적으로 하지 않는 남성이 더 민감하게 느끼기도 한다. 몸에 털이 많은 편인 김동환(23)씨는 체대생이다. 민소매 유니폼 때문에 얼마 전에 처음 겨드랑이 털 제모를 한 뒤 이제는 절대 안 한다. “제모하고 났더니 너무 따가운 거예요. 다시 자라는 털이 굵어져서인지 가만히 있어도 따가워서 이제 ‘밀지 말라’고 얘기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2차 겨털 시위 땐 배드민턴 대회를
이번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의 겨드랑이 털 관리 방식은 다양했다. 시위를 위해 겨드랑이 털을 기른 사람도 있었고, 제모를 한 뒤 인공 털을 붙이고 온 사람도 있었고, 원래 제모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이번 시위를 통해 얻은 건 겨드랑이 털에 대한 다른 시선도 가능하다는 용기였다. 일본인 하마무는 “나처럼 제모를 억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위안이 되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주해은씨는 “혼자서는 못할 것 같았는데 사람들이 많아지니 안 밀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즘은 제모를 하지 않고 자라는 내 겨드랑이 털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혜원은 “내가 하고 싶은 얘기, 그렇지만 남들이 금기시하는 이야기를 거리에서 즐겁게 말하고 있다는 생각에 속시원했다”고 말했다.
겨드랑이 털에 대한 다른 생각은 조금씩 지분을 넓히고 있다. 회사원 지선(24)은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겨드랑이 털을 보이면서 찍은 사진을 친한 지인들만 볼 수 있는 ‘부분 공개’ 상태로 게시했다. 지선은 “고등학교 성교육 시간에 나의 매력으로 ‘털이 없는 몸’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털이 원래 없어서 팔다리 제모를 한 번도 안 했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겨드랑이 털이 나면서 자연스러운 겨드랑이 털을 왜 잘라야 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결국 털 없는 매끈함을 아름답다고 생각한 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에 저항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선은 이번 여름은 겨드랑이 털을 밀지 않고 보낼 계획이란다. ‘부분 공개’에서 ‘전체 공개’로 용기를 내고 있는 셈이다.
겨털 시위대는 시위하는 1시간 동안 웃고 떠들며 겨드랑이 털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이들은 “다음에는 겨드랑이 털을 기르면서 관찰일기를 쓰자” “겨드랑이 털을 기른 채 배드민턴 대회를 열자”고 말했다. ‘이번엔 겨드랑이 털이 너무 짧았다’는 아쉬움에 2차 겨드랑이 털 시위를 하자는 말도 나왔다. 얼마 전 영국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이스라엘 출신 사진가 벤 호퍼는 2007년 작업한 자신의 프로젝트 ‘내추럴 뷰티’를 공개했다. 다양한 여성들이 겨드랑이 털을 최대한 드러내는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에 대해 사람들은 낯설지만 개성 있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내렸다. ‘겨털 시위’ 기획자 주해은씨는 시위 포스터를 만들면서 겨드랑이 털을 제모하지 않은 소피아 로렌의 사진을 자주 봤다.
내 몸을 긍정하는 태도
처음엔 낯설었지만 보면 볼수록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란 생각이 들었다. 벤 호퍼는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에게 겨드랑이 털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간과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작업했다고 말했다. 겨드랑이 털은 우리 몸의 일부다. 주씨는 말한다. “겨드랑이 털을 인정하는 건 내 몸을 긍정하는 태도, 만들어진 시선에 굴하지 않겠다는 자신감의 다른 이름이다.”
서지원 인턴기자 iddgee@gmail.com·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