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글] 타오르는 연대의 불꽃, 페인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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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전여민회 댓글 0건 조회 1,552회 작성일 21-01-14 16:35본문
[편집자주] 이제는 지난해가 된 2020년, 지역 청소년/청년 페미니스트 그룹 이야기 프로젝트 <우리의 페미니즘>을 진행했습니다.
당시 이야기프로젝트에 참여한 팀중 <앞으로 우리의 페미니즘> 네트워크파티에 참여했던 팀들의 원고를 연재합니다. 주제는 '2020 나의 페미니즘 정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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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연대의 불꽃, 페인킬러
2020년은 페미니즘의 또 다른 전성기라고 생각한다. 사건도 많았지만 적어도 문학, 영화 등 예술계에서 흔히 ’여성 서사‘라 불리는 작품들이 많이 등장한 것을 그 증거로 내세우고 싶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대한민국 콘텐츠산업 2018년 결산과 2019년 전망 세미나‘에서 주요 결산 키워드로 ’여성시대‘를 꼽았다. 걸캅스, 82년생 김지영, 최근 방영된 삼진그룹 토익반까지 여성 주연을 내거는 영화계들. 모든 영화와 작품들이 페미니즘적으로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중 사이에서 페미니즘이 하나의 ’유행‘이 되어 가시화된 것은 페미니즘이 가져온 변화의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여성 배우들이 엄마와 여자친구, 영웅으로 표현되는 남주인공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주체적인 서사를 갖는 캐릭터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영화를 즐겨보는 나는 뿌듯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페인킬러가 창단된 해라는 점에서 2020년은 내 인생의 페미니즘 전성기라 부를 만하다.
그런 2020년 1월, 내가 첫 번째로 접한 영화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는 주인공 두 사람이 마을 아낙네들의 축제에 합류해 모닥불 앞에서 같이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해당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긴장감을 가져오는 연출로 시작한다. 귀족으로 살아왔던 엘로이즈는 무엇을 하는 장소인지도 모른 채 낯선 여자들이 모여있는 장소로 이끌린다.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라 그들의 눈짓과 정적에서 오는 긴장감을 읽었고, 그들의 목소리가 시작될 때만 해도 비명이라고 생각했다. 장르가 스릴러인지 의심했던 그 불협화음은 곧 화음으로 바뀌고, 작은 축제가 시작된다. 앞치마를 두른 여인들. 장신구 없이 투박한 외양의 여인들이 손을 잡고 휘휘 뛰어노는 모습은 묘한 만족감을 주었다. 그 모습은 내게 자유로움이 주는 즐거움을 보여주었고 그 순간만큼은 나도 그 옆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말 한마디 없었지만, 그들은 가족 이상의 가치를 가진 공동체였고 서로의 삶에 대한 위로였다. 나는 그들의 웃음을 동경했고, 나 역시 또 다른 모닥불을 쬐고 앉아있었다. 이것이 내게 있어 페인킬러가 가지는 의미다. 페인킬러의 상징색이 붉은 색인 것은 이런 점에서 참 아이러니하다. 모닥불에서 엘로이즈의 드레스에 불이 타오르는 것이 계기가 되어 마리안느와 엘로이즈가 보다 친밀한 관계로 진전한 것처럼, 저 불이 우리의 마음에 붙어 잊을 수 없는 청소년기를 보내게 할 것이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끔 우리의 목소리가 소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비혼과 비출산을 이야기하면, 어른들은 ’애를 안 낳으면 대가 끊어진다‘고, 친구들은 조용히 돌아가 가정주부로 사는 로망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속도대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차분하고 강단 있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상 가족 관계는 아니어도 우리는 순전히 우리의 선택과 노력으로 공동체를 맺었다. 아낙네들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나처럼 조금 두려울지는 몰라도 그 소리를 경청하다 보면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화음과 즐거움이 보일거라 생각한다. 바람과 콧노래만 있으면 널리 퍼져나갈 수 있는 것, 그것이 여성 공동체와 네트워크가 가진 힘이다. 아직은 작은 불씨지만, 장작같은 노력들이 모여 페인킬러가 여성 청소년 연대의 장을 열어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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