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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성착취사건으로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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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전여민회 댓글 0건 조회 1,190회 작성일 20-05-2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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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리그램 성착취사건으로 부르자"

 

지난 2018년 중학생 여동생의 사진을 올려놓고 '여동생을 성폭행할 사람을 찾는다'는 텀블러 게시판의 글 때문에 우리 사회가 충격을 받았다. 글의 내용도 놀라웠지만 이 글에 대한 반응이 우리를 더욱 분노케 했다. 이 글에 대해 9,210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2,257명이 자신의 블로그에 퍼갔으며, 자신에게 ‘메시지를 달라’는 댓글도 1만개 가까이 달렸다. 그간 해외에 서버를 둔 사이트 게시자는 찾아내기 어렵다고 했으나 사건에 대한 국민의 충격과 분노가 커지자 경찰은 美 국토안보부의 협조로 가해자를 검거했다.

가해자는 20대 회사원이었고 그가 올린 글은 거짓이었으나 수사를 통해 유사한 이전 범죄와 불법촬영물들이 발각됐다. 거짓 게시물로 신상정보가 유출된 피해자는 낯선 이들의 연락으로 충격을 받고 대인기피증에 걸려 있었다.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정도가 큰 것에 비해 가해자의 형량은 징역 1년이었고 신상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가해자는 이미 사회로 돌아왔다. 그리고 ‘좋아요’를 누르고 ‘DM’을 발송하며 디지털 성범죄에 가담했던 이들에게 처벌은커녕 그들이 누구인지 드러나지도 않은 채 우리 곁에 있다. 이들은 이 사건 후 반성을 했을까, 다시는 ‘디지털 성범죄’를 하지 않을까?

 

세계도 깜짝 놀라는 낮은 성범죄 처벌수위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해 10월 한국, 미국, 영국 등 32개국 국제 공조수사로 회원 수 128만여 명의 세계 최대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유통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의 운영자와 이용자가 적발됐다. 이 사이트에서는 25만 건 이상의 영유아 성착취 음란물이 유통되었고, 검거된 이용자 310명 가운데, 한국인이 228명으로 밝혀져 큰 충격을 줬다. 다크웹은 특정 웹브라우저만으로 접속할 수 있어 음란물 공유, 마약판매 같은 불법행위가 자행되는 곳이다.

이번 사건으로 가장 관심을 끈 것은 ‘다크웹’이라는 낯선 사이트와 함께 아동대상 성착취물에 대한 경미한 처벌이었다. 외국의 엄벌주의와 다르게 우리사회는 디지털 성범죄, 성착취 영상물에 대해 가벼이 다룬다는 비판이었다. 이 때문에 가해자 손정우는 징역 1년 6개월의 형량을 받아 이번 4월에 출소한다. 경미한 처벌에 분노한 국민들이 가해자를 미국 법무부로 강제송환을 바라며 국민청원을 올렸고 4월 초 현재 30만 명 넘게 참여중이다. 미국에서는 아동 성범죄 영상을 다운로드해 보유하기만 해도 징역 5년 이상, 보호관찰 10년이 선고된다.

 

성착취 카르텔, 과거에도 N번방은 존재했다

최근 텔레그램에서 벌어진 여성·아동 성범죄로 다시 경악하고 있지만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신종범죄가 아니다. 텀블러, 다크웹 그리고 이전에 소라넷에서 행해졌던 성적 가학행위들이 반복되고 진화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성착취 동영상을 다운받아 돌려보고 즐겼던 100만 명의 구독자들, 한 번도 처벌받지 않고 누구에게 비난도 받은 않은 이들이 사이트만 바꿔가며 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니 정준영의 ‘황금폰’이 예능거리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텔레그램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가해자의 이력에 대해서 ‘스토리텔링’할 필요 없다. 이곳의 일들은 이제까지 벌어졌던 성폭력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고 가해자 또한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온 우리 사회 일반 남성이었다.

 

성범죄 영상을 바라보는 관점

사이트 운영자들이 처벌받고 비난 받을 때 구독자이었거나 혹은 일반 남성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왔나, ‘나는 아닌데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한다’며 불쾌해 한다. 남성의 성욕은 본능이고 충족을 위해 필요하다고 ‘성범죄 영상’을 ‘야한(?) 동영상’이라 부른다. 더 나아가 ‘성매매 합법화’까지 거론한다.

야한 동영상이 아니다. 아동·여성의 성을 착취한 동영상, 가학행위 동영상, 성범죄 동영상이다. 아동·청소년을 성적인 호기심과 기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재론의 여지없이 멈춰야 하고 제거해야 할 일탈이다. 그렇다고 그 대상이 성인일지라도 이들의 작위적이고 가학적인 성적행위로 즐거워하며 욕망을 해소하는 자가 있다면 자신의 모습을 반추해보길 바란다. 우리가 원하는 유쾌하고 즐거운 섹슈얼리티가 이런 범죄인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나윤경 원장은 ‘잠재적 가해자’ 취급에 대해 화를 내기보다 스스로 가해자와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한다. 한쪽은 화가 나는 문제이지만 다른 한쪽은 인간의 존엄성·기본권 침해의 문제, 생존이 걸린 사안이기 때문이다. 서로 불신하고 혐오하는 길로 가는 것보다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상생의 길을 위해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도록 권하고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사건이라 불러야 한다

N번방 사건으로 부르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드러내지 못한다. 소셜네트워크 텔레그램 대화방은 성범죄의 특징이고 장소다. 디지털 세계가 성범죄의 본질이 아니다. 이곳에서 성착취, 성범죄가 벌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N번방이 무엇인지, 그 방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자극적인 상상력으로 번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범죄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반성 이전에 이 영상물을 향한 호기심으로 사려는 사람, 팔려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생겨날 뿐이다.

사건을 피해자 이름으로 칭하는 것, 불필요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호칭은 부적절하다. 가해자를 드러내거나 사건의 본질을 알 수 있도록 네이밍해야 한다. 그렇기때문에 이 사건은 텔레그램 성착취사건(성범죄)으로 불러야 한다. 부적절한 호칭은 남성중심 프레임으로 본질을 왜곡해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

 

범죄를 대하는 시민의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져야

성범죄 사건은 가해자 처벌, 피해자 지원, 사회적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다각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이 글은 가해자 처벌에 대한 단상이다.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그 간의 사회적 인식수준, 법체계가 현재를 만들어냈고 이를 뒷받침한 것은 남성적 성문화(성인식)라는 판단이다. 처벌은 형량을 높이는 엄벌주의-법 제·개정-만이 아니라 가해자 교정과 재발방지라는 여러 가지 대책이 함께 이야기 되어야 한다.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해서 대결할 문제가 아니다. 이제까지 우리 사회가 쌓아온 인권의 확장을 훼손하고 일탈하는 가해자에게 시민으로써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우리는 사건의 네이밍에서부터 가해자 처벌수위를 높이자는 주장, 전담판사의 성인지 감수성까지 주시하며 당장 시민으로써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 이제 더 나아가 피해자의 시민권 보장과 시민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옥분/ 대전경찰청 성평등정책관]

위 기고글은 인권신문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