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우미 인권은 없는 것 같아요” <기록되지 않은 노동> 행사도우미로 이십 대를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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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전여민회 댓글 0건 조회 6,775회 작성일 14-06-24 15:02본문
[일다는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과 공동 기획으로, 기록되지 않았던 여성노동자들의 일과 삶을 이야기하는 기사를 연재합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행사도우미, 유망한 직종?
대졸 취업난과 아르바이트 시장 경쟁이 언론에서 언급될 때, 내레이터 모델과 판촉 도우미 직종은 그 중 시급이 높고 20대의 지원 비중이 90%를 넘어서는 대표 직종으로 꼽힌다.
스물두 살 때부터 행사도우미 일을 시작해 7년째 그 일을 하고, 이제 스물아홉 살이 된 최미연(가명) 씨는 ‘유망하다’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십여 년 전과 페이(임금)가 똑같고 이제 너도 나도 하려는 사람이 많다 보니까 오히려 낮아지는 추세예요. 페이는 행사마다 다른데 경력이나 외모도 중요시하구요. 보여주는 직업이다 보니까. 시간당 만 원, 이만 원 선인데 일이 짧게는 하루, 전시 같은 경우 길게는 4,5일이에요. 일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까 불안하죠. 일이 얼마나 들어오느냐에 달린 건데, 하고 싶다고 일정을 다 소화할 수도 없고 갑자기 취소된다거나 임금을 안 주는 등 변동 사항이 많지요. 생활을 계획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요즘은 전 같으면 행사가 많을 때지만 세월호 이후 많이 행사가 축소되었어요. 계약서를 쓰는 것도 극히 드문 일이에요. 저는 장기 계약으로 들어갈 때 계약서 쓴 적 있지만 그런 일은 전체에서 십 프로 미만이에요.”
업체가 갑자기 일정을 바꾸거나 변심해서 행사를 취소하는 경우가 자주 있지만, 그럴 때 아무 보상도 못 받는다. 행사 도우미들은 ‘그때그때 스케줄을 관리하고 생활을 하게 되는데’ 하루 전날이나 당일에 갑자기 취소를 하게 되면 그 손해가 커서 굉장히 힘들어지게 된다고 했다. ‘그런 경우에는 절반 정도의 페이라도 달라. 삼분의 일이라도 달라’고 요구해보기도 했지만 업체에서 그렇게 한 적은 없다.
“광고주한테서 오더를 받으면 에이전시가 도우미들을 모집해요. 광고주가 있고 대행사, 에이전시가 있고 그 밑에 도우미들이 있는 거죠. 우리는 에이전시나 대행사의 눈치를 보고 불만이나 할 말이 있어도 다음에 일을 못 받을까 봐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요. 법적인 조치도 없고. 반대로 도우미가 몸이 아프다거나 부득이한 일이 생기면 업체 쪽에서 난리가 나요. 자기들은 ‘미안하다’는 말이면 끝인데 도우미들이 그러면 매장되는 분위기죠. ‘당신, 앞으로 일 못 할 거야, 다음에 우리 볼 생각하지 말아!’ 되게 기분 나쁘게 저희한테 말씀을 하죠.”
하루를 일하더라도 계약서를 쓸 수 있었으면…
최미연 씨는 스스로 ‘꼬치꼬치 따지는’ 사람이라고 했다. 일을 시작할 때도 자신이 어떤 장소에 가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미리 꼭 물어본다. 그렇지 않고 무조건 “네”라고 해놓고 가보면 갑자기 말이 바뀌고 허용 범위보다 일이 더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임금이 체불될 때도 따졌다. 세 번까지 참다가 돈을 줄 때까지 전화를 했단다. “제 노동의 대가를 받는 거잖아요.” 돈을 지급하라고 요구할 땐 그 업체와 일을 안 할 각오까지 한다. 금액이 얼마 되지 않는데도 업체는 돈을 바로 지급해주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같은 일을 해도 최미연 씨처럼 요구하는 이에게는 제일 먼저 돈을 주고, 같이 일한 다른 동료에겐 세 달 뒤에야 돈을 준 적도 있었다.
“페이를 지급하기로 한 날짜를 안 지켜주세요. 잘 주는 업체가 있는 반면 안 주는 업체도 있고 임금 체불로 소송까지 가는 업체도 봤어요. 우린 그 돈을 받아야 생활이 되는데 계속 미루거나 전화를 안 받거나 날짜를 변경하고 말을 바꾸고 기다리게 하고… 일을 했으면 돈을 받아야 하는 거잖아요? 근데, 말 잘 못하는 도우미, 싫은 소리 못하는 도우미는 작은 금액인데도 세 달 뒤에나 겨우 받거나 못 받는 경우도 있고. 아무 데서나 일이 오면 그냥 믿고 해야 하는 건가? 어디가 괜찮은 업체인지, 우린 판별하기 어렵죠. 도우미들은 약자지요.”
인터뷰 중에도 한 에이전시가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붉은 치마와 민소매 흰 티를 입은 여자 사진이 왔다.
“민소매를 입으라 하네요. 옷을 주시기도 하지만 사진에 맞춰 자기 옷을 챙겨 가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큐시트도 오고, 이렇게 알려주는 건 친절한 편이에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거든요. 그럼 더 힘들죠. 내일 일은 이벤트 간단히 진행해서 응모하시는 분에게 선물하는 일이에요.”
최미연 씨는 함께 온 진행 대본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일을 할 때 그녀가 바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하루를 일하더라도 계약서를 쓰면 좋을 거 같아요. 쌍방간의 약속이니까 계약서를 쓰면 좋겠고, 당일이나 하루 전에 취소하는 일이 없으면 하고, 취소하면 보상한다는 거 명시해주면 좋겠고, 도우미의 안전을 더 생각해주면 일하기 좋을 거 같아요. 일하는 사람의 건강도 좀 고려해 주면 일하기 좋을 것 같고…. 제일 많이 신경 쓰는 거는 페이예요. 다들 ‘어, 돈 못 받으면 어떡하지?’ 그게 제일 먼저 불안해요. ‘갑자기 펑크 나서 돈이 안 생겼네.’ 그것도 불안하고. 약자니까. 하지만, 어차피 돈을 벌려고 다들 하는 일이잖아요.”
도우미를 보는 ‘그런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어
그녀는 다양한 일을 한다. 회사 이미지 홍보 도우미도 하고, 정장을 입고 안내하는 의전 일도 하고, 안내 데스크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일도 하고, 추첨 이벤트 진행을 하거나 회사 홍보를 위한 체험 진행을 하기도 한다. 업체는 대기업, 중소기업, 공공기관, 학교, 프랜차이저, 작은 가게도 있다. 일하는 시간은 행사마다 다르지만 적어도 다섯 시간에서 여덟 시간을 일한다.
최미연 씨는 프랜차이저 오픈 때 마이크를 들고 이벤트 설명을 하는 내레이터 일도 해보았다. 밖에서 계속 서서 일하는데 한여름 땡볕 아래였다. 파라솔 하나가 없었다. 한겨울엔 칼바람 속에 서 있다. 너무 덥고, 너무 춥고, 목이 아프고, 다리가 아팠다. 하지만 최미연 씨는 “되게 힘들어요.”라고 한마디 할 뿐이다. 그 말을 할 때 표정이 잠시 우울하게 굳는다. 사십오 분 말하고 십오 분을 쉬거나, 오십 분을 말하고 십 분을 쉴 때, 그 오 분, 십 분 차이가 아주 크게 느껴졌다고 했다.
“저는 원래 목이 약한 편인데 계속 말해야 하니까 편도염이 잘 걸려요. 다른 분들도 많이 그렇고…. 또 저희 일은 아무래도 고객들 위주로 친절하고 기분 좋게 항상 응대해드려야 하잖아요. 도우미 인권은 없는 것 같아요. 성희롱도 있고…. 제가 들어본 말 중 되게 기분 나쁘고 불쾌했던 것은, ‘축하 드립니다. 선물 드릴게요.’ 하면 아저씨가 나보고 ‘언니는 안 주나? 다른 건 안 주나?’ 능글맞게 말한 거예요. 할아버지가 뒤에서 안은 적도 있고. 끈적끈적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적 있고.”
다른 도우미들도 그런 일들을 겪는다고 한다.
“저는 키도 별로 안 크고 연예인처럼 예쁜 편도 아닌데 키 큰 다른 언니한테는 더 심하고. 그때 저는 ‘왜 이러세요?’ 하거나 보안이 옆에 있으면 제재를 부탁하지만 대책이 미미하죠. 업체에서 시끄럽게 만드는 거 싫어하니까 많이 넘기는 것 같아요. 저런 얘기 들으려고 내가 이런 일 하는 거 아닌데… 되게 기분이 안 좋죠.”
“반말하는 것부터 좀 바꿔주면 좋겠어요”
행사를 진행하다 보면 반말을 수시로 듣거나, 함부로 대하는 태도를 접한다. 한정된 선물을 충분히 드렸는데도 더 달라고 하거나 물건을 훔쳐가는 고객도 있다.
“일하고 있는데 안 좋은 시선으로 보신다거나 노골적으로 본다거나 말도 반말 많이 해요. ‘아가씨, 이것 좀 해줘 봐, 이게 뭐야, 이거 줘!’ 이렇게 말해요. 나가보면 이삼십 대는 그래도 저희를 존중해주는 편인데 사오십 대 분들이 반말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딸처럼 생각해서 그러는지 몰라도 기분이 안 좋아요. 무시하는 어조라서 기분이 나빠요… 도우미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변화가 생겨야 할 거 같아요. 우리는 일하고 있는 거거든요. 마음으로 존중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업체도 도우미에게 존댓말 안 하고 반말하는 분도 계시니까 그런 것부터 바꿔주면 좋겠어요.”
이 일이 ‘잠깐 하기 괜찮다고들 여겨’ 대학생들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시험 준비를 한다거나 학교 공부를 한다거나 자기 진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행사 도우미 일을 하는 젊은 여성들이 많다.
“저희 도우미끼리는 ‘무슨 일 하세요?’ 물으면 ‘프리랜서예요.’ 하거든요. 도우미라 하면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경우도 있어서… 노래방 도우미도 있고, 사람들은 도우미 하면 그게 먼저 생각이 나시나 봐요. 짧게 노출한 의상 입고 춤추는 내레이터 모델, 도우미, 하면서 부정적인 인식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우리끼리 프리랜서라고 해요.”
“‘프리’들은…”. 그녀는 동료들을 지칭할 때 그렇게 불렀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다양한 일을 하니까 재미도 있고, 자기가 한 말이나 진행한 게임에, 주는 선물에 손님들이 즐거워하니까 기쁠 때도 있다. 그런 긍정적인 보람, 생계를 책임지는 노동에 대한 자긍심, 그리고 언젠가는 원하는 곳, 존중 받고 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날 거라는 희망이 ‘프리’라는 단어 속에 담겨 있다. 그래서 그녀들은 ‘그런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고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연기자에 대한 꿈을 품고서…
그녀는 스물두 살 때에 시리얼을 판매하는 마트의 판촉 도우미 일을 시작했다. 아홉 시간 일해서 오만 원을 받았다. 같은 일을 해도 경력이 없다 싶으면 업체에서 임금에 차등을 두었다. “난 일을 잘했어요.” 그녀가 웃었다.
그녀는 전문대 예술학과를 나왔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공부했을 때는 연기에 대한 꿈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연극도 하고, 오디션을 보고, 여러 곳에 지원을 했다. 수입이 없어 방값조차 밀리게 되자, ‘일을 하면서 연기를 해야겠다’ 마음 먹고 다시 판촉 도우미 일을 했다. 연기하는 친구들이 행사 도우미 일도 같이 하는 걸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된다.
“연기라는 것 자체가 언제 부를지 모르고 오 분 대기조 같은 성격이라서 직장 생활을 못 한 거죠. 행사 도우미를 하려는 게 아니라 연기를 하려는 거니까 참으면서 도우미 일을 하는 거죠. 연기로는 생활이 안 되니까.”
그래서 스물네 살에 본격적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베이비 스킨케어 상품 판촉 도우미. 그걸 일 년 계약직으로 했어요. 한 달에 이십일 이상 일하는 건데 저는 일 욕심이 있어서 한 달에 이십오일 이상 일했어요. 하루에 아홉 시간 하고 일당 구만 원 받았어요. 그때 구만 원이면 마트에서 제일 많이 받은 거예요. 일 년 고정수익이 있었지만 일은 되게 힘들어요. 계속 서서 일하고 매출 압박도 있고. 매출 압박은 경쟁사보다 높게 기준을 달성하라고 저희한테 내려와요. 일반 판매직이 아니라 판매를 잘하는 팀을 따로 만들어 절 뽑은 거라, 매출 압박이 더 컸죠. 한 곳에서만 일하지 않고 여러 마트를 가야 했어요. 집과 멀리 있는 곳, 왕복 서너 시간 걸리는 매장으로도 가야 했고, 몹시 힘든 일이에요.”
그때 에이전시에서 그녀에게 ‘사대보험을 들지(고용 계약), 세금을 3.3% 뗄지(프리랜서 계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그녀는 4대 보험에 가입하고 보험금을 내는 것을 선택했다. 고용된 노동자라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일이 끝난 뒤에 실업급여를 몇 개월 받을 수 있었어요. 하길 잘했구나 싶었지만 그 후로 사대보험을 들 기회는 전혀 없었죠.” 하루에 아홉 시간, 한 달에 이십오 일, 일 년을 계약직으로 일했던 그녀는 그 후 더 이상 노동자가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행사장의 꽃? 시들면 싫어하겠죠
주로 에이전시나 프로모션을 통해 일용직으로 일을 구해왔다. 행사 도우미 소모임 같은 카페를 찾아 들어가 프로필을 작성해 메일로 지원하기도 했다. 에이전시나 대행사가 광고주 쪽에 연계되어 있어서 ‘오더’를 받으면 에이전시가 그런 소모임에 기재를 한다. 에이전시와는 거의 구두로 약속한다. 광고주가 책정하는 금액에서 에이전시가 자기가 정하는 일부를 빼고 도우미한테 돈을 준다. 그때 에이전시가 많이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보통은 7 대 3이라고 생각하는데 더 많이 떼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금액을 모르는데 간혹 광고주가 이번에 얼마 줬다는 말을 들으면 ‘아, 에이전시가 굉장히 많이 떼어갔구나.’ 알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불투명하죠. 우리는 에이전시가 일을 주면 감사한 거고, 안 주면 못하는 거니까, 에이전시한테 잘못 보일까 봐, 밉보일까 봐, 쉬쉬하는 도우미들이 많아요. 기분 나쁘고 불합리한 거를 불평하지만 얘기 못 하는 분들이 많죠. 키 크고 외모가 되시는 분은 모터쇼나 레이싱 쪽으로 포즈모델 하시고 페이가 더 높아요. 아무래도 상품이잖아요. 외모관리를 많이 해요. 성형수술을 많이 한다거나 포즈 모델은 가슴 성형한다거나 다이어트 한다거나. 계속 일하려고 그렇게들 하죠.”
최미연 씨는 자신을 계속 연기자로 여기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에 단역으로도 출연했다. 하고 싶은 일이 연기였지만 드라마 촬영장에서 스치다시피 하는 배역을 맡은 자신은 이름이 없었다. “얘, 쟤”라고 반말로 불리며 짐짝처럼 푸대접을 받을 때가 많았다. 알고 보니 내가 본 영화들에도 그녀가 출연한 적이 있었다. 나는 다음 영화에서는 그녀의 얼굴을 또렷이 알아보겠다고 약속했다. 최미연 씨가 말한다.
“한국 나이로 지금 제가 스물아홉 살의 여자인데 일반 직장생활의 이력이 없어요. 이제 직장생활은 못하겠죠? 소위 말하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일하기 힘들겠죠. 지식도 없고 커리어도 없기 때문에. 그래서 행사도우미 했던 분들이 어차피 이쪽 일들을 많이 알기 때문에 에이전시 실장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요. 아님 비서나 경리로 간다거나. 행사 도우미 일은요, 다들 잠깐 하고 말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이에요. 도우미들 스스로도. 다른 걸 같이 생각하고 다들 준비한단 말이에요. 취업준비 하면서, 학교 다니며, 잠깐 하거나 거쳐 가는 일로 인식해요. 도우미들 스스로 오래는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보통 관리를 잘하면 삼십 대 초중반까지 일할 수 있다고 하는데 어려워요, 이건 보여주는 직업이잖아요. 예쁘고 늘씬한 여자를 찾죠. 행사장의 꽃이라고 하는데, 이런 도우미들은… 시들면 싫어하겠죠.”
삶을 걸었고, 진심으로 이 일을 해왔으니까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하지만 전 뿌듯해요. 이 일 하면서 저는 학자금을 다 갚았어요. 예술대 2년제를 나왔는데 부모님한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어서 학자금을 모두 빌려 학교를 다녔거든요. 학교를 졸업할 때 그 빚이 이천만 원이었어요. 행사도우미 일을 해서 돈이 생기면 그 빚을 갚았어요. 몇 십만 원 생겼다, 오십만 원 생겼다 하면 그때마다 돈을 갚은 거예요. 학교를 졸업해 스물네 살부터 4년 동안 일해서 그 돈을 다 갚았어요. 되게 뿌듯했어요. 전 그동안 진짜 열심히 했어요!”
그녀는 앞으로 결혼하게 된다면 이렇게까지는 안 살고 싶다고 말하며 웃었다. “젊은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알바는 다 해봤거든요.” 학자금을 갚고 자신의 힘으로 몇 백만 원의 보증금을 마련해 작은 월세 방을 구한 것도 무척 뿌듯하다.
다들 그랬다. 행사 도우미 일은 잠깐, 거쳐 가는 일일 뿐이라고. 지나치는 고객들도, 땡볕 아래에 종일 서 있는 도우미 자신도 이것이 삶의 배경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는지, 왜 그런 역할을 하는지, 누가 그것을 정하는지, 노동의 조건이 어떤지, 바꿀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지금 주어진 모든 것이다. 이곳이 우리가 머무르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된다.
“어차피 본인이 가지고 있는 걸 잘 헤쳐 나가야 해요. 잘 구분하는 눈을 가지고 똑 부러지게 헤쳐 나가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녀는 바란다. 자신이 하는 노동이 짓밟히지 않기를, 하대 받지 않기를, 대가를 받을 수 있기를. 왜냐하면 주어진 노동을 ‘진짜 열심히’ 수행했으므로. 스물아홉에 처음으로 얻은 작은 방 한 칸, 허락되지 않았지만 기어이 해낸 공부, 그 꿈 때문에 치러야 했던 것들, 지켜낸 자립. 자기 삶을 책임지려고 진심으로 이 일을 했으므로. 정해준 어떤 복장으로, 어떤 말로, 어떤 한결같은 웃음으로 일해야 했더라도 그녀는 삶을 걸었고 진심이었으므로. 그 진심이 존중을 받기를 원한다. 믿었으므로 약속이 지켜지기를 바란다.
그녀는 내일도 일을 하러 나간다.
-여성주의저널 <일다>- 안미선
행사도우미, 유망한 직종?
대졸 취업난과 아르바이트 시장 경쟁이 언론에서 언급될 때, 내레이터 모델과 판촉 도우미 직종은 그 중 시급이 높고 20대의 지원 비중이 90%를 넘어서는 대표 직종으로 꼽힌다.
스물두 살 때부터 행사도우미 일을 시작해 7년째 그 일을 하고, 이제 스물아홉 살이 된 최미연(가명) 씨는 ‘유망하다’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십여 년 전과 페이(임금)가 똑같고 이제 너도 나도 하려는 사람이 많다 보니까 오히려 낮아지는 추세예요. 페이는 행사마다 다른데 경력이나 외모도 중요시하구요. 보여주는 직업이다 보니까. 시간당 만 원, 이만 원 선인데 일이 짧게는 하루, 전시 같은 경우 길게는 4,5일이에요. 일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까 불안하죠. 일이 얼마나 들어오느냐에 달린 건데, 하고 싶다고 일정을 다 소화할 수도 없고 갑자기 취소된다거나 임금을 안 주는 등 변동 사항이 많지요. 생활을 계획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요즘은 전 같으면 행사가 많을 때지만 세월호 이후 많이 행사가 축소되었어요. 계약서를 쓰는 것도 극히 드문 일이에요. 저는 장기 계약으로 들어갈 때 계약서 쓴 적 있지만 그런 일은 전체에서 십 프로 미만이에요.”
업체가 갑자기 일정을 바꾸거나 변심해서 행사를 취소하는 경우가 자주 있지만, 그럴 때 아무 보상도 못 받는다. 행사 도우미들은 ‘그때그때 스케줄을 관리하고 생활을 하게 되는데’ 하루 전날이나 당일에 갑자기 취소를 하게 되면 그 손해가 커서 굉장히 힘들어지게 된다고 했다. ‘그런 경우에는 절반 정도의 페이라도 달라. 삼분의 일이라도 달라’고 요구해보기도 했지만 업체에서 그렇게 한 적은 없다.
“광고주한테서 오더를 받으면 에이전시가 도우미들을 모집해요. 광고주가 있고 대행사, 에이전시가 있고 그 밑에 도우미들이 있는 거죠. 우리는 에이전시나 대행사의 눈치를 보고 불만이나 할 말이 있어도 다음에 일을 못 받을까 봐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요. 법적인 조치도 없고. 반대로 도우미가 몸이 아프다거나 부득이한 일이 생기면 업체 쪽에서 난리가 나요. 자기들은 ‘미안하다’는 말이면 끝인데 도우미들이 그러면 매장되는 분위기죠. ‘당신, 앞으로 일 못 할 거야, 다음에 우리 볼 생각하지 말아!’ 되게 기분 나쁘게 저희한테 말씀을 하죠.”
하루를 일하더라도 계약서를 쓸 수 있었으면…
최미연 씨는 스스로 ‘꼬치꼬치 따지는’ 사람이라고 했다. 일을 시작할 때도 자신이 어떤 장소에 가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미리 꼭 물어본다. 그렇지 않고 무조건 “네”라고 해놓고 가보면 갑자기 말이 바뀌고 허용 범위보다 일이 더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임금이 체불될 때도 따졌다. 세 번까지 참다가 돈을 줄 때까지 전화를 했단다. “제 노동의 대가를 받는 거잖아요.” 돈을 지급하라고 요구할 땐 그 업체와 일을 안 할 각오까지 한다. 금액이 얼마 되지 않는데도 업체는 돈을 바로 지급해주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같은 일을 해도 최미연 씨처럼 요구하는 이에게는 제일 먼저 돈을 주고, 같이 일한 다른 동료에겐 세 달 뒤에야 돈을 준 적도 있었다.
“페이를 지급하기로 한 날짜를 안 지켜주세요. 잘 주는 업체가 있는 반면 안 주는 업체도 있고 임금 체불로 소송까지 가는 업체도 봤어요. 우린 그 돈을 받아야 생활이 되는데 계속 미루거나 전화를 안 받거나 날짜를 변경하고 말을 바꾸고 기다리게 하고… 일을 했으면 돈을 받아야 하는 거잖아요? 근데, 말 잘 못하는 도우미, 싫은 소리 못하는 도우미는 작은 금액인데도 세 달 뒤에나 겨우 받거나 못 받는 경우도 있고. 아무 데서나 일이 오면 그냥 믿고 해야 하는 건가? 어디가 괜찮은 업체인지, 우린 판별하기 어렵죠. 도우미들은 약자지요.”
인터뷰 중에도 한 에이전시가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붉은 치마와 민소매 흰 티를 입은 여자 사진이 왔다.
“민소매를 입으라 하네요. 옷을 주시기도 하지만 사진에 맞춰 자기 옷을 챙겨 가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큐시트도 오고, 이렇게 알려주는 건 친절한 편이에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거든요. 그럼 더 힘들죠. 내일 일은 이벤트 간단히 진행해서 응모하시는 분에게 선물하는 일이에요.”
최미연 씨는 함께 온 진행 대본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일을 할 때 그녀가 바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하루를 일하더라도 계약서를 쓰면 좋을 거 같아요. 쌍방간의 약속이니까 계약서를 쓰면 좋겠고, 당일이나 하루 전에 취소하는 일이 없으면 하고, 취소하면 보상한다는 거 명시해주면 좋겠고, 도우미의 안전을 더 생각해주면 일하기 좋을 거 같아요. 일하는 사람의 건강도 좀 고려해 주면 일하기 좋을 것 같고…. 제일 많이 신경 쓰는 거는 페이예요. 다들 ‘어, 돈 못 받으면 어떡하지?’ 그게 제일 먼저 불안해요. ‘갑자기 펑크 나서 돈이 안 생겼네.’ 그것도 불안하고. 약자니까. 하지만, 어차피 돈을 벌려고 다들 하는 일이잖아요.”
도우미를 보는 ‘그런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어
그녀는 다양한 일을 한다. 회사 이미지 홍보 도우미도 하고, 정장을 입고 안내하는 의전 일도 하고, 안내 데스크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일도 하고, 추첨 이벤트 진행을 하거나 회사 홍보를 위한 체험 진행을 하기도 한다. 업체는 대기업, 중소기업, 공공기관, 학교, 프랜차이저, 작은 가게도 있다. 일하는 시간은 행사마다 다르지만 적어도 다섯 시간에서 여덟 시간을 일한다.
최미연 씨는 프랜차이저 오픈 때 마이크를 들고 이벤트 설명을 하는 내레이터 일도 해보았다. 밖에서 계속 서서 일하는데 한여름 땡볕 아래였다. 파라솔 하나가 없었다. 한겨울엔 칼바람 속에 서 있다. 너무 덥고, 너무 춥고, 목이 아프고, 다리가 아팠다. 하지만 최미연 씨는 “되게 힘들어요.”라고 한마디 할 뿐이다. 그 말을 할 때 표정이 잠시 우울하게 굳는다. 사십오 분 말하고 십오 분을 쉬거나, 오십 분을 말하고 십 분을 쉴 때, 그 오 분, 십 분 차이가 아주 크게 느껴졌다고 했다.
“저는 원래 목이 약한 편인데 계속 말해야 하니까 편도염이 잘 걸려요. 다른 분들도 많이 그렇고…. 또 저희 일은 아무래도 고객들 위주로 친절하고 기분 좋게 항상 응대해드려야 하잖아요. 도우미 인권은 없는 것 같아요. 성희롱도 있고…. 제가 들어본 말 중 되게 기분 나쁘고 불쾌했던 것은, ‘축하 드립니다. 선물 드릴게요.’ 하면 아저씨가 나보고 ‘언니는 안 주나? 다른 건 안 주나?’ 능글맞게 말한 거예요. 할아버지가 뒤에서 안은 적도 있고. 끈적끈적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적 있고.”
다른 도우미들도 그런 일들을 겪는다고 한다.
“저는 키도 별로 안 크고 연예인처럼 예쁜 편도 아닌데 키 큰 다른 언니한테는 더 심하고. 그때 저는 ‘왜 이러세요?’ 하거나 보안이 옆에 있으면 제재를 부탁하지만 대책이 미미하죠. 업체에서 시끄럽게 만드는 거 싫어하니까 많이 넘기는 것 같아요. 저런 얘기 들으려고 내가 이런 일 하는 거 아닌데… 되게 기분이 안 좋죠.”
“반말하는 것부터 좀 바꿔주면 좋겠어요”
행사를 진행하다 보면 반말을 수시로 듣거나, 함부로 대하는 태도를 접한다. 한정된 선물을 충분히 드렸는데도 더 달라고 하거나 물건을 훔쳐가는 고객도 있다.
“일하고 있는데 안 좋은 시선으로 보신다거나 노골적으로 본다거나 말도 반말 많이 해요. ‘아가씨, 이것 좀 해줘 봐, 이게 뭐야, 이거 줘!’ 이렇게 말해요. 나가보면 이삼십 대는 그래도 저희를 존중해주는 편인데 사오십 대 분들이 반말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딸처럼 생각해서 그러는지 몰라도 기분이 안 좋아요. 무시하는 어조라서 기분이 나빠요… 도우미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변화가 생겨야 할 거 같아요. 우리는 일하고 있는 거거든요. 마음으로 존중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업체도 도우미에게 존댓말 안 하고 반말하는 분도 계시니까 그런 것부터 바꿔주면 좋겠어요.”
이 일이 ‘잠깐 하기 괜찮다고들 여겨’ 대학생들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시험 준비를 한다거나 학교 공부를 한다거나 자기 진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행사 도우미 일을 하는 젊은 여성들이 많다.
“저희 도우미끼리는 ‘무슨 일 하세요?’ 물으면 ‘프리랜서예요.’ 하거든요. 도우미라 하면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경우도 있어서… 노래방 도우미도 있고, 사람들은 도우미 하면 그게 먼저 생각이 나시나 봐요. 짧게 노출한 의상 입고 춤추는 내레이터 모델, 도우미, 하면서 부정적인 인식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우리끼리 프리랜서라고 해요.”
“‘프리’들은…”. 그녀는 동료들을 지칭할 때 그렇게 불렀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다양한 일을 하니까 재미도 있고, 자기가 한 말이나 진행한 게임에, 주는 선물에 손님들이 즐거워하니까 기쁠 때도 있다. 그런 긍정적인 보람, 생계를 책임지는 노동에 대한 자긍심, 그리고 언젠가는 원하는 곳, 존중 받고 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날 거라는 희망이 ‘프리’라는 단어 속에 담겨 있다. 그래서 그녀들은 ‘그런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고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연기자에 대한 꿈을 품고서…
그녀는 스물두 살 때에 시리얼을 판매하는 마트의 판촉 도우미 일을 시작했다. 아홉 시간 일해서 오만 원을 받았다. 같은 일을 해도 경력이 없다 싶으면 업체에서 임금에 차등을 두었다. “난 일을 잘했어요.” 그녀가 웃었다.
그녀는 전문대 예술학과를 나왔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공부했을 때는 연기에 대한 꿈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연극도 하고, 오디션을 보고, 여러 곳에 지원을 했다. 수입이 없어 방값조차 밀리게 되자, ‘일을 하면서 연기를 해야겠다’ 마음 먹고 다시 판촉 도우미 일을 했다. 연기하는 친구들이 행사 도우미 일도 같이 하는 걸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된다.
“연기라는 것 자체가 언제 부를지 모르고 오 분 대기조 같은 성격이라서 직장 생활을 못 한 거죠. 행사 도우미를 하려는 게 아니라 연기를 하려는 거니까 참으면서 도우미 일을 하는 거죠. 연기로는 생활이 안 되니까.”
그래서 스물네 살에 본격적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베이비 스킨케어 상품 판촉 도우미. 그걸 일 년 계약직으로 했어요. 한 달에 이십일 이상 일하는 건데 저는 일 욕심이 있어서 한 달에 이십오일 이상 일했어요. 하루에 아홉 시간 하고 일당 구만 원 받았어요. 그때 구만 원이면 마트에서 제일 많이 받은 거예요. 일 년 고정수익이 있었지만 일은 되게 힘들어요. 계속 서서 일하고 매출 압박도 있고. 매출 압박은 경쟁사보다 높게 기준을 달성하라고 저희한테 내려와요. 일반 판매직이 아니라 판매를 잘하는 팀을 따로 만들어 절 뽑은 거라, 매출 압박이 더 컸죠. 한 곳에서만 일하지 않고 여러 마트를 가야 했어요. 집과 멀리 있는 곳, 왕복 서너 시간 걸리는 매장으로도 가야 했고, 몹시 힘든 일이에요.”
그때 에이전시에서 그녀에게 ‘사대보험을 들지(고용 계약), 세금을 3.3% 뗄지(프리랜서 계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그녀는 4대 보험에 가입하고 보험금을 내는 것을 선택했다. 고용된 노동자라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일이 끝난 뒤에 실업급여를 몇 개월 받을 수 있었어요. 하길 잘했구나 싶었지만 그 후로 사대보험을 들 기회는 전혀 없었죠.” 하루에 아홉 시간, 한 달에 이십오 일, 일 년을 계약직으로 일했던 그녀는 그 후 더 이상 노동자가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행사장의 꽃? 시들면 싫어하겠죠
주로 에이전시나 프로모션을 통해 일용직으로 일을 구해왔다. 행사 도우미 소모임 같은 카페를 찾아 들어가 프로필을 작성해 메일로 지원하기도 했다. 에이전시나 대행사가 광고주 쪽에 연계되어 있어서 ‘오더’를 받으면 에이전시가 그런 소모임에 기재를 한다. 에이전시와는 거의 구두로 약속한다. 광고주가 책정하는 금액에서 에이전시가 자기가 정하는 일부를 빼고 도우미한테 돈을 준다. 그때 에이전시가 많이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보통은 7 대 3이라고 생각하는데 더 많이 떼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금액을 모르는데 간혹 광고주가 이번에 얼마 줬다는 말을 들으면 ‘아, 에이전시가 굉장히 많이 떼어갔구나.’ 알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불투명하죠. 우리는 에이전시가 일을 주면 감사한 거고, 안 주면 못하는 거니까, 에이전시한테 잘못 보일까 봐, 밉보일까 봐, 쉬쉬하는 도우미들이 많아요. 기분 나쁘고 불합리한 거를 불평하지만 얘기 못 하는 분들이 많죠. 키 크고 외모가 되시는 분은 모터쇼나 레이싱 쪽으로 포즈모델 하시고 페이가 더 높아요. 아무래도 상품이잖아요. 외모관리를 많이 해요. 성형수술을 많이 한다거나 포즈 모델은 가슴 성형한다거나 다이어트 한다거나. 계속 일하려고 그렇게들 하죠.”
최미연 씨는 자신을 계속 연기자로 여기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에 단역으로도 출연했다. 하고 싶은 일이 연기였지만 드라마 촬영장에서 스치다시피 하는 배역을 맡은 자신은 이름이 없었다. “얘, 쟤”라고 반말로 불리며 짐짝처럼 푸대접을 받을 때가 많았다. 알고 보니 내가 본 영화들에도 그녀가 출연한 적이 있었다. 나는 다음 영화에서는 그녀의 얼굴을 또렷이 알아보겠다고 약속했다. 최미연 씨가 말한다.
“한국 나이로 지금 제가 스물아홉 살의 여자인데 일반 직장생활의 이력이 없어요. 이제 직장생활은 못하겠죠? 소위 말하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일하기 힘들겠죠. 지식도 없고 커리어도 없기 때문에. 그래서 행사도우미 했던 분들이 어차피 이쪽 일들을 많이 알기 때문에 에이전시 실장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요. 아님 비서나 경리로 간다거나. 행사 도우미 일은요, 다들 잠깐 하고 말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이에요. 도우미들 스스로도. 다른 걸 같이 생각하고 다들 준비한단 말이에요. 취업준비 하면서, 학교 다니며, 잠깐 하거나 거쳐 가는 일로 인식해요. 도우미들 스스로 오래는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보통 관리를 잘하면 삼십 대 초중반까지 일할 수 있다고 하는데 어려워요, 이건 보여주는 직업이잖아요. 예쁘고 늘씬한 여자를 찾죠. 행사장의 꽃이라고 하는데, 이런 도우미들은… 시들면 싫어하겠죠.”
삶을 걸었고, 진심으로 이 일을 해왔으니까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하지만 전 뿌듯해요. 이 일 하면서 저는 학자금을 다 갚았어요. 예술대 2년제를 나왔는데 부모님한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어서 학자금을 모두 빌려 학교를 다녔거든요. 학교를 졸업할 때 그 빚이 이천만 원이었어요. 행사도우미 일을 해서 돈이 생기면 그 빚을 갚았어요. 몇 십만 원 생겼다, 오십만 원 생겼다 하면 그때마다 돈을 갚은 거예요. 학교를 졸업해 스물네 살부터 4년 동안 일해서 그 돈을 다 갚았어요. 되게 뿌듯했어요. 전 그동안 진짜 열심히 했어요!”
그녀는 앞으로 결혼하게 된다면 이렇게까지는 안 살고 싶다고 말하며 웃었다. “젊은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알바는 다 해봤거든요.” 학자금을 갚고 자신의 힘으로 몇 백만 원의 보증금을 마련해 작은 월세 방을 구한 것도 무척 뿌듯하다.
다들 그랬다. 행사 도우미 일은 잠깐, 거쳐 가는 일일 뿐이라고. 지나치는 고객들도, 땡볕 아래에 종일 서 있는 도우미 자신도 이것이 삶의 배경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는지, 왜 그런 역할을 하는지, 누가 그것을 정하는지, 노동의 조건이 어떤지, 바꿀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지금 주어진 모든 것이다. 이곳이 우리가 머무르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된다.
“어차피 본인이 가지고 있는 걸 잘 헤쳐 나가야 해요. 잘 구분하는 눈을 가지고 똑 부러지게 헤쳐 나가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녀는 바란다. 자신이 하는 노동이 짓밟히지 않기를, 하대 받지 않기를, 대가를 받을 수 있기를. 왜냐하면 주어진 노동을 ‘진짜 열심히’ 수행했으므로. 스물아홉에 처음으로 얻은 작은 방 한 칸, 허락되지 않았지만 기어이 해낸 공부, 그 꿈 때문에 치러야 했던 것들, 지켜낸 자립. 자기 삶을 책임지려고 진심으로 이 일을 했으므로. 정해준 어떤 복장으로, 어떤 말로, 어떤 한결같은 웃음으로 일해야 했더라도 그녀는 삶을 걸었고 진심이었으므로. 그 진심이 존중을 받기를 원한다. 믿었으므로 약속이 지켜지기를 바란다.
그녀는 내일도 일을 하러 나간다.
-여성주의저널 <일다>- 안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