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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글] 응시하기, 눈두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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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전여민회관리 댓글 0건 조회 22회 작성일 21-09-2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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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어느 날에 여민회에서 모니터링 활동을 위한 사전 교육을 받을 때였다. 디지털성폭력에 관한 사건들을 개괄하면서 담당자 선생님께서 몇차례 질문을 하셨다. “이 사건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라든가 “이 개념이 무슨 뜻인지 알고 계신가요?” 등. 그러나 이어지는 질문에 머쓱한 침묵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까지는 인터넷을 하면서도 성폭력을 목격하는 것조차 의식적으로 피해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성폭력이 아니라 뉴스 배너에 뜬 성적 광고, 일반 커뮤니티일지라도 애써 모른 채 해왔다. 알게 되면 움직여야 하는데 행동하는 것은 쉽고 간편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껏 디지털 성폭력, 성매매, 성희롱 등은 나와 관련 없는 일이라고 단정짓고 살아왔다. 어설프게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된 것이다. 질문과 어물쩍 넘어가려는 답 사이의 정적은 결국 근본적인 물음으로 이어졌다. “나는 페미니스트인가?”

 

 이런 물음을 갖고 6월의 첫 활동을 시작했다. 시작하기 전에는 막상 어디서부터 자료를 수집해야 할지, 무엇을 모니터링 해야할지 막막했으나 일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유투브 플랫폼의 댓글만으로도 자료를 다 모을 수 있었다. 성희롱이 판치는 댓글창. 성희롱 댓글을 유도하는 편집된 영상들. 한번 찾기 시작하자 똑똑한 유투브는 알고리즘으로 관련 영상을 계속해서 띄워주었고 6월 활동은 내내 유투브의 영상과 댓글로 자료를 수집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대개의 영상은 여성 연예인의 무대 영상을 특정 신체 부위를 확대하거나 편집한 것이었다. 영상의 댓글들은 타임라인을 특정해 공유하며 희롱했다.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10일간 자료를 수집하다보니 영상 업로드와 댓글 작성 날짜 등이 점점 현재와 멀어져갔고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서 7월에는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 모니터링하였다.

 

 텀블러 플랫폼은 이전에 사용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모니터링을 하며 살핀 텀블러는 이제껏 알던 플랫폼이 아니었다. 유투브 플랫폼과 비교해보았을 때 SNS 성격을 띄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되지만 유투브에 비해 굉장히 폐쇄적이고 게시물 삭제, 계정 신고 등의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텀블러에서는 여러 가지 키워드로 검색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모니터링 활동을 하며 알게 된 키워드들이 있다. ‘업스’, ‘고등어’, ‘능욕’. ‘업스’는 ‘up-skirt’의 줄임말로 여성 하의를 불법 촬영한 영상, 사진을 지칭한다. ‘고등어’는 고등학생을 뜻하는 은어이다. ‘능욕’은 국어사전에 따르면 1. 남을 업신여겨 욕보임 2. 여자를 강간하여 욕보임 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텀블러에서 ‘능욕’은 여성을 ‘업신여기’고 언어로 ‘강간하여 욕보’인다는 뜻으로 쓰이는 것 같다. 모욕적이고 불쾌하고 천박하고 수치스러운 말들이 넘쳐난다. 그 말들은 일반 여성이 개인 SNS에 올린 사진을 캡쳐해서, 여성 연예인의 무대 사진을 악의적으로 편집한 사진 밑에 달린다. “ㄱㄷㅇ 업스, 지인 능욕 해드려요”의 키워드를 단 게시물은 리그램되고 저장되어 영영 떠돌아다닌다.

 

 불법촬영물과 능욕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주로 여성들이다. 더 좁게는 젊은 여자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이기 때문에 성적 대상화의 대상이 되고 불법촬영물의 피해자가 된다. 모니터링 활동 이전에 디지털 성폭력은 나와 이질적인 세계로 느껴졌다. 일상과 유리되어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디지털 성폭력은 음성화와 양성화의 줄다리기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아주 깊숙이 일상에 파고들어 있었다. 그것을 더이상 모른 채 하지 않고, 응시하는 일. 응시하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 그래야만 활동을 시작할 때의 물음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