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성 역할 인식이 자연스러운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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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전여민회 댓글 0건 조회 664회 작성일 23-05-08 15:53본문
성 역할 인식이 자연스러운 거라고?
성역할은 신이 준 것이니 침해하면 안 된다고?
대전인권신문에 실린 이형우 교수의 '성역할 인식과 자연권'을 읽고
(대전여민회 이은주)
지난 4월, 대전시인권센터가 발행하는 대전인권신문에 '성역할 인식과 자연권'이라는 제목의 전문가 기고글이 실렸다.
대전인권신문은 시민기자단이 글을 쓰고 언론인으로 구성된 편집위원회가 이를 검토하여 발행되던 월간신문이다.
그런데 올해부터 대전인권센터 수탁기관이 반인권활동을 해온 단체로 바뀌면서 많은 논란과 우려를 낳고 있다.
인권신문 역시 월간이 계간으로 바뀌었고, 그 내용도 변화가 예상되어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성학이나 사회학 관련 배경이 없는 행정학과 교수가 전문가라며 기고글을 실었는데, 가관이었다.
"자연권은 인권의 개념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자연권이란 자연 상태의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갖는 권리를 의미한다. 인권을 절대시하는 철학적 배경 역시 자연권의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출생 시부터 가진 권리는, 초월적 존재인 신에 의해 주어진 것이므로, 한계적 존재인 인간이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아는 천부인권사상이다." -대전인권신문 6면 '성역할 인식과 자연권' 중.
글을 읽는 첫 문단부터 의문이 들었다.
초월적 존재인 '신'에 의해 주어진 권리를 한계적 존재인 '인간'이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 '천부인권사상'이라고 이형우 한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적어 놓았다.
이 교수는 이 문장을 어떤 의미에서 썼을까? 기독교 신자인가?
천부인권은 자연권과 동일한 개념으로 왕권신수설에 대응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개념이다.
그러니까 신 중심 시대에 모든 이들의 권리를 이야기 하려면 그 근원을 신으로부터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신을 차용한 것뿐이다.
천부인권을 주장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로크, 홉스와 같은 계몽주의자들 아닌가?
이들은 중세시대의 신과 그의 대리자들로부터 지배에서 벗어나고 인간 이성을 신뢰하자고 했던 자들이 아닌가?
이들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스스로 존엄하기 때문에 국가나 다른 권력이 그 권리를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인데,
다시 신을 높이기 위해서 쓰여진 말인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참으로 황당한 발상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인권의 의미가 지나치게 확장되면서, 대다수의 자연적인 사고방식을 편견 혹은 고정관념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인권의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논리가 확산되고 있다. 심히 우려스러운 것은, 권력을 가지는 국가기관이 이처럼 무리한 논리를 근거로 강제력을 동원하여, 소수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국민 다수의 자연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전인권신문 6면 '성역할 인식과 자연권' 중.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읽었다.
이 교수는 두 번째 문단에서 '인권의 의미가 지나치게 확장되어 자연적 사고방식을 편견이나 고정관념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했다.
'국가기관이 무리한 논리를 강제력을 동원하여 소수집단의 이익을 위해 국민 다수의 자연권을 침해한다'고도 했다.
아하, 이제야 대충 무슨 말이 뒤따를지 감이 잡혔다.
이 글의 제목이 '성역할 인식과 자연권'이니, 그는 성 소수자에 대한 비난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성역할 고정관념을 고수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국가기관이 강제력을 행사한다고? 이 말은 조금 억울하다.
왜냐하면 한국이 그렇게 성 평등한 국가나 퀴어 친화적인 나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광장에서 퀴어퍼레이드 한번 하는데 서울시청과 그렇게 갈등을 빚는 이 나라에서 무슨 국가가 강제력을 동원한다는 말인가?
그렇게까지 국가권력이 퀴어들 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이마저도 강제력 동원을 운운한다니.
국제적 조약과 국가적 위상, 격에 맞추어 마지못해 시행되는 정책들조차도 저런 식으로 생각하겠구나 싶었다.
"인간의 언어와 그에 따른 인식은 원형(prototype)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그 단어의 원형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파란색의 새를 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옆에서 '새'라는 소리를 내는 것을 듣게 된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아이는 '새'라는 개념이 파란색이라는 색깔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어머니가 붉은색의 새를 보고 똑같이 '새'라는 소리를 내는 것을 듣는 순간, 이 아이는 새라는 단어가 색깔과 무관하게 날개를 가진 동물을 의미한다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날개를 가진 동물이 바로 새라는 개념의 '원형'임을 이해한 것이다.“
"코넬리 교수 연구팀은 2004년 매우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하여 만들어진 서양인과 동양인의 인종 배합 비율이 서로 다른 다양한 얼굴 사진 중에서, 어느 하나(예: 서양인 70%, 동양인 30%로 배합된 얼굴)를 보여주고 인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대답하도록 하였다. 잠시 후 아래의 사진 전체를 보여준 후 자신이 보았던 얼굴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질문하면, 대부분 자신이 본 얼굴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한다. 서양인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자신이 실제로 본 얼굴보다 서양인에 더 가까운 얼굴(예: 서양인 80%)을 선택하며, 동양인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동양인에 더 가까운 얼굴(예: 동양인 40%)을 선택한다. 이 연구 결과는 인간의 인식과 기억이 원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회상 역시 그 원형을 중심으로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대전인권신문 6면 '성역할 인식과 자연권' 중.
이 교수는 그 다음 문단에서 원형(Prototype)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 교수는 코넬리 교수의 실험을 마음대로 차용해서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의 근거로 썼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코넬리 교수는 '인종 개념의 기저에는 생물학적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이 실험은 실험 자체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서양인과 동양인의 인종배합 비율이 서로 다른 얼굴 사진 중에
어느 하나(서양인 70%, 동양인 30%)를 보여주고 인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대답하는 실험이었다.
실험 결과는 대부분 자신이 실제로 본 얼굴보다 자신이 대답한 얼굴에 더 가까운 인종의 얼굴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실험을 통해 무엇을 통찰할 수 있을까?
우리가 생물학적 차이라고 알고 있던 인종 개념이 실제로는 생물학적 실체가 없고 자신이 갖고 있던 고정관념에 의해 더욱 확증편향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우리는 이 실험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의 삶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종 문제의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인종적 범주를 사실로 받아들일 때, 그것이 현실적 결과를 가져오는 방식에서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인종 차별을 하지 않아야 한다.
최근에는 젠더(gender)라는 개념이 도입되면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대중의 일반적인 인식을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비난하는 풍조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그런데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이러한 풍조는 사회에 자연스럽게 공유된 규범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권력을 가진 정부가 앞장서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많은 정치인과 공무원이 '국민 인식 개선'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매우 불편하다. '개선'이라는 단어는 잘못된 것을 선하게 고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정치인과 공무원이 국민의 인식을 개선한다는 것은 국민의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누가 정치인과 공무원에게 우리의 인식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할 권한을 주었는가? 국민인 우리의 인식에 따라 공적인 일을 수행하는 것이 정치인과 공무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틀린 것인가? 이 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것은 알고는 있는지 궁금하다.
여성이라는 개념의 원형에는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라는 존재로서의 인식이 포함되어 있다. 대개의 가정에서 아이에게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을 주는 대상은 주로 어머니이다. 여성이 자녀를 출산할 때와 모유 수유를 할 때 다량 분비되는 옥시토신은 산모의 아이에 대한 사랑을 증폭시킨다. 흔히 모성애가 부성애보다 강하다고 느끼는 것은 옥시토신 때문이다. 대부분의 어머니는 어린 자녀를 돌보는 것을 아버지보다 더 즐길 뿐 아니라 더 잘한다.
따라서 어머니라는 여성 개념의 원형은 일부의 주장처럼 억압적 사회규범에 의해 형성된 것이 결코 아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자란 아이들의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학습된 것이다. 그 결과 대다수는 어머니에 대하여 따뜻한 사랑을 베푸는 존재라는 원형적 인식을 갖게 된다. 이러한 개인의 인식이 사회의 다수에 의해 공유되면 여성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으로 확대된다. 그러므로 개념의 원형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성역할 인식을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규정하고 금지시키는 것은 국가권력의 폭압이다." -대전인권신문 6면 '성역할 인식과 자연권' 중.
이 교수는 그 다음 주제로 성인지 교육에 대해서 말한다.
이 주제에서는 사실 주장의 대부분이 특별한 근거가 없다.
그냥 자기가 갖고 있는 편견을 드러내는 글일 뿐이다. 젠더 개념에 반대하고 성역할에 대해 강조하고 싶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공공기관에서 발행하는 신문에 글을 올리려면 합리적 근거나 생각해 볼만한 논리적 사유가 담겨야 한다.
그런데 이 교수는 그냥 젠더 개념이 도입되면서 성 역할 고정관념을 비판하는 것이 불편한 것 같다.
'성 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은 공유된 규범에 기반 한 것은 아니다. 왜 그것을 국민인식 개선이라는 표현을 쓰는지 불쾌하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가 이야기했듯이 어머니의 역할은 경험을 통해 학습된 것이다.
이렇듯 문화를 통해 학습되어진 성 역할을 우리는 ‘젠더’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머니라는 인격이 갖춰야만 한다고 믿고 있는 인자함, 보살핌, 돌봄과 같은 성질들은
여성이라면 원래부터 갖고 있는 타고난, 본질적인, 자연스러운 것일까? 어떤 시대와 상관없이 모든 문화에 보편적으로 자리 잡은 것일까?
정말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어린 자녀들을 돌보는 것을 아버지보다 더 즐기고 더 잘할까?
글쎄,
엘리자베스 바댕테르의 <만들어진 모성>에 의하면 18세기 프랑스에서는 부모들이 스스로 자식을 돌보지 않고 유모를 통해 젖을 먹이고 교육을 시켰다.
1780년, 파리의 치안 감독관이 제시한 통계에 따르면 매년 태어나는 파리의 유아들 가운데 모유를 먹고 자란 아기들은 5퍼센트도 안 된다고 한다.
어머니의 보살핌과 모유수유가 유아 생존의 가능성을 높여주던 시대에 오히려 아이들이 방임되고 있었다.
18세기 말까지도 이렇게 만연했던 아동방임이 19세기 산업혁명이 시작되며 노동력이 중요시 되자 국가는 모성애를 여성에게 강요하기 시작한다.
이 교수와 같은 사람들을 우리는 본질주의자라고 부른다. 사람은 '남성'이나 '여성'으로 만드는 식별 가능한 본질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정말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의 근원인 '인종'이나 '성'과 같은 개념들이 그냥 타고난 것일까?
과학계에서는 이미 '인종' 개념에 생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구도 100%순혈은 없기 때문이다.
성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여성과 남성으로만 나뉠 수 있을까? 그것이 현 시대의 어떤 문화에서도 통용되는 개념이고 역사적으로 살펴봤을 때도 그러할까?
간성의 사람들은(성기, 유전자등의 조합이 두 개의 특징을 모두 담고 있거나 교차되어 있는 사람들) 어떻게 봐야할까?
여자일까, 남자일까? 신이 무능한 걸까? 신의 실패작일까?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이 범주화되어 실제의 것으로 간주되는 역사적 과정을 사회적 구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개념들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구성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러한 개념들은 사회적으로 구성되었지만 불평등한 체계로써 사람들의 삶에 실제로 영향을 미친다.
또 그러한 믿음이 전 세계 여성과 남성의 삶에 실제적 결과를 가져온다.
젠더를 먼저 이해해야 무엇이 변해야 하는지를 바로 볼 수 있다.
구성주의자들이 젠더를 공부하는 이유이다.
이형우 교수에게도 모르는 분야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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