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에겐 '사회재활센터' 같던 곳... 축소, 폐지라니요"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대전여민회 댓글 0건 조회 266회 작성일 23-12-06 09:57본문
"피해자에겐 '사회재활센터' 같던 곳... 축소, 폐지라니요"
"고용평등상담실을 지켜주세요" 어느 피해자가 보낸 편지
본 연재는 전국 고용평등상담실 네트워크가 공동 기획, 집필합니다. <기자말>
[서울여성노동자회 신상아]
"성폭력을 겪고 제 삶은 몸만 어른인 유아로 돌아갔습니다. 사회적 관계, 일, 일상까지 모두 퇴화되어 삶의 곳곳이 멈춰버리고 갇혀버렸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집에서 그 일 이후, 방문과 창문 블라인드 모두를 내리고 걸어 잠그고 숨죽이며 밖에 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친구들, 지인들, 세상 사람을 피해 스스로를 가둔 채 보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킨 채 2년을 보내던 그녀가 겨우 세상 밖으로 걸음마를 시작하려 할 때, 가해자는 명예쉐손으로 그녀를 고소했다. 그녀는 자신을 두 번 죽이려는 가해자를 보며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밝혀야겠다고 서울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을 찾았다.
상담실에서 그녀를 마주한 나는 몇 시간일지 모르는 시간 동안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 동행하지 않고는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던 그녀가 얼마나 온 힘을 다해 상담실을 찾았을지 짐작하고도 남아 그녀의 말을 끊을 수 없었다. 억울해도 그냥 묻고 지내려던 피해자를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가해자에 대해 함께 분노했다.
그렇게 가해자와의 싸움을 결심한 그녀는 꼼꼼함의 대가가 되려는 듯했다. 직장 근무 중 가해자와 있었던 장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CCTV나 블랙박스 등 입증될 만한 자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또한 가해자와의 메신저 대화 내용뿐 아니라 주변인들과의 대화 내용, 통신사에 요청해 통화내역 정리, 카드 결제 내역 등 사건 해결에 조금이라도 입증자료가 될 만한 것은 모두 정리했다.
상담실에 올 때면 커다란 백팩을 메고 왔다. 가방 속은 늘 수집한 자료들로 가득했다. 상담실은 법률전문가의 무료법률상담을 통해 '경찰에 가서 진술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재판을 위해서는 어떤 자료를 제출할 것인지, 어떻게 진술할지'를 검토하고 그녀의 싸움을 도왔다. 처음에는 4시간이나 걸리던 상담이 회기를 거듭하며 3시간, 2시간으로 단축될 때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권리 회복을 위한 다방면의 지원과 상담, 무료 심리상담까지
상담실은 무료 심리상담을 지원하며, 그녀가 무너지지 않도록 도왔고, 집단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해 비슷한 피해자들이 서로 위로받고 지지받도록 했다. 사건이 마무리되기까지 3년이 걸렸다. 그 시간은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성장의 시간이었다. 집단치유 글쓰기 프로그램 소책자 '우린 달라진 세상을 살거야'에 '소송에 준비하는 당신에게 드리는 조언'을 실어, 자신이 대응하며 알게 된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어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2020년에 사건이 마무리되었으니 또 3년이 다 되어간다. 나는 느닷없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고, 정부가 24년간 운영해 온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을 폐지하고 8개 지청에서 상담실을 운영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니 당신의 상담 경험을 들려 달라 청했다. 그녀는 민간고용평등상담실이 꼭 유지되어야 한다며 흔쾌히 마음 내어 주었다.
--------------------------------------------------------------------------
고용평등상담실을 지켜주세요!
--------------------------------------------------------------------------
나는 그녀의 글을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 미안함과 상담실을 '사회재활센터'라고 말해 준 고마움이 교차했다. 그녀가 상담받기 위해서, 서울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을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고용평등상담실이 필요하다
이제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이 폐지가 되면 또 다른 그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30분 상담받기 위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전국에 8개 지청 중 한 곳을 방문해야 하고, AI가 답변해 주는 것 같은 기계적 상담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연차 사용도 자유롭지 않은 작은 기업의 피해자를 지청이 밤늦게까지 기다려 상담을 해 줄까? 공공기관 종사자라면 행정기관인 지청에 피해사실을 쉽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지청에서 상담하는 사람이 진정, 고소, 재판 등에 동행하며 긴장한 피해자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지지해 줄 수 있을까?
고용노동부는 24년간 운영해 온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을 한마디 상의도 없이 폐지하겠다고 한다. 피해자 권리구제 방안도 없고, 제대로 된 정책방안도 없는 졸속 행정이다. 단지 민간에 고용평등상담실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만 있다.
힘없는 여성노동자는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사회적 약자를 대책 없이 내팽개치는 졸속행정을 당장 멈춰라!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신상아 활동가는 서울여성노동자회 소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