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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에겐 '사회재활센터' 같던 곳... 축소, 폐지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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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전여민회 댓글 0건 조회 85회 작성일 23-12-06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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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에겐 '사회재활센터' 같던 곳... 축소, 폐지라니요"

"고용평등상담실을 지켜주세요" 어느 피해자가 보낸 편지

본 연재는 전국 고용평등상담실 네트워크가 공동 기획, 집필합니다. <기자말>

[서울여성노동자회 신상아]

"성폭력을 겪고 제 삶은 몸만 어른인 유아로 돌아갔습니다. 사회적 관계, 일, 일상까지 모두 퇴화되어 삶의 곳곳이 멈춰버리고 갇혀버렸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집에서 그 일 이후, 방문과 창문 블라인드 모두를 내리고 걸어 잠그고 숨죽이며 밖에 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친구들, 지인들, 세상 사람을 피해 스스로를 가둔 채 보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킨 채 2년을 보내던 그녀가 겨우 세상 밖으로 걸음마를 시작하려 할 때, 가해자는 명예쉐손으로 그녀를 고소했다. 그녀는 자신을 두 번 죽이려는 가해자를 보며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밝혀야겠다고 서울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을 찾았다.

 

상담실에서 그녀를 마주한 나는 몇 시간일지 모르는 시간 동안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 동행하지 않고는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던 그녀가 얼마나 온 힘을 다해 상담실을 찾았을지 짐작하고도 남아 그녀의 말을 끊을 수 없었다. 억울해도 그냥 묻고 지내려던 피해자를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가해자에 대해 함께 분노했다.

 

그렇게 가해자와의 싸움을 결심한 그녀는 꼼꼼함의 대가가 되려는 듯했다. 직장 근무 중 가해자와 있었던 장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CCTV나 블랙박스 등 입증될 만한 자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또한 가해자와의 메신저 대화 내용뿐 아니라 주변인들과의 대화 내용, 통신사에 요청해 통화내역 정리, 카드 결제 내역 등 사건 해결에 조금이라도 입증자료가 될 만한 것은 모두 정리했다.

 

상담실에 올 때면 커다란 백팩을 메고 왔다. 가방 속은 늘 수집한 자료들로 가득했다. 상담실은 법률전문가의 무료법률상담을 통해 '경찰에 가서 진술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재판을 위해서는 어떤 자료를 제출할 것인지, 어떻게 진술할지'를 검토하고 그녀의 싸움을 도왔다. 처음에는 4시간이나 걸리던 상담이 회기를 거듭하며 3시간, 2시간으로 단축될 때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권리 회복을 위한 다방면의 지원과 상담, 무료 심리상담까지

 

상담실은 무료 심리상담을 지원하며, 그녀가 무너지지 않도록 도왔고, 집단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해 비슷한 피해자들이 서로 위로받고 지지받도록 했다. 사건이 마무리되기까지 3년이 걸렸다. 그 시간은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성장의 시간이었다. 집단치유 글쓰기 프로그램 소책자 '우린 달라진 세상을 살거야'에 '소송에 준비하는 당신에게 드리는 조언'을 실어, 자신이 대응하며 알게 된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어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2020년에 사건이 마무리되었으니 또 3년이 다 되어간다. 나는 느닷없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고, 정부가 24년간 운영해 온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을 폐지하고 8개 지청에서 상담실을 운영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니 당신의 상담 경험을 들려 달라 청했다. 그녀는 민간고용평등상담실이 꼭 유지되어야 한다며 흔쾌히 마음 내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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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평등상담실을 지켜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일상이 무너진 성폭력 피해자에서 반쯤 넋이 나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3년을 넘게 법정 싸움을 싸우던 피고인이었다가, 이젠 이전 같진 않지만, 또 온전하다고 할 수 없지만,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긴 시간을 지켜준 건 제 부모님과 제 주변 지인을 포함하여 10명 채 안 되는 분들이었습니다. 아마 이 분들이 없었다면 전 아직도 제 방에 갇혀 정상적인 사람 구실 못하거나 극단적으로 안 좋은 선택을 했었을 것입니다.
그 10명이 안 되는 분들 중에 제가 앞을 못 보는 상황에서 허우적대다가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저를 어떻게든 건져내겠다고 같이 제가 빠진 그 깊은 웅덩이에 들어와 제 팔을 붙잡고, 다시 안전한 곳으로 끌어내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던 실질적인 일들을 돕고 저와 함께 해주신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서울여성노동자회에 계신 국장님과 직원 분들입니다.
얼마 전 뉴스를 들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예산을 삭감하고, 규모를 대폭 축소해 자체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뉴스였습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나와 같은 사람이 없겠구나, 암담하다, 나는 정말 행운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사실 서울여성노동자회 상담실에 가기 전에 먼저 국가가 제공한다는 무료 법률 상담소들을 찾아가봤었기에 여성노동자회에 처음 상담을 받으러 갈 때 불신이 더 컸습니다. '국가가 한다는 곳도 이렇게 밖에 안 되는데, 민간에서 나를 얼마나 도와줄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피해 입은 당시 제가 받았던 지자체 무료 법률 상담은 인터넷 예약 통해 30분 내외 받는 비전문가 상담이었습니다. 법원 근처에서 받던 무료법률상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0분 상담의 시간은 제가 제 상황을 설명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습니다. 연속성 있는 심화된 혹은 정말 개인을 고려해 할 수 있는 상담이 아니라 요즘 시대 AI가 답변해 주는 것보다 시간과 내용이 부족한 그런 피상적인 일회성 자판기 상담이었습니다. 30분 상담을 받기 위해 예약을 하기까지도 최소 며칠에서 한 달 이상인 곳이었고, 막상 상담을 받기 위해 그 곳을 찾아가려면 집에서 대체적으로 1시간 이상이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도착해도 상담이 연착되어 항상 1-2시간 이상 또 막연히 기다려야 됐습니다.
당시 제가 당한 피해는 직장 내에서, 그것도 지자체 공공기관과 매우 밀접한 직장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피해를 입은 곳과 관련성이 많은 곳으로 상담을 가야한다고 했다면 솔직히 주저하는 것은 당연하고 제 일의 진행에 대해서도 공정성과 신뢰를 할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거기다 피해로 몸과 마음 만신창이에 공황장애까지 있었는데 시청, 구청, 동사무소, 이런 곳으로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전 그 사이에 그것도 평일, 점심시간 제외, 주말, 공휴일도 제외하고 방문해야 했습니다. 담당자가 공석이나 출장, 연차, 휴가이면 불가능에 계속 보류. 제 순서가 오긴 했을까요?
하지만 그렇게 사회적 외면을 받아 처절하게 버려지고 포기를 강요당하는 상황과 현실적 여건에서.. 도움이 절실한 제가 미친 사람 되어 그냥 포기하려 할 때 서울여성노동자회 상담실은 달랐습니다. 제가 병원 치료 받고 늦게 도착해도 사무실의 문을 열고 제가 오기까지 그곳을 기다려줬습니다. 막연한 두려움과 겁을 내며, 법정에 서야할 때도 저를 붙들어 법원에 동행해주었습니다.
저의 시간에 맞춰 본인들의 근무를 조정하고 늦게까지 일하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분들이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닐 텐데, 그래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늦게까지 일하며 저녁 식사로 보이는 김밥 한 줄을 나눠 주면서 뭐라도 먹어야 된다고 힘내야 한다며 저를 붙들어줬고 살아야한다고 더욱 고삐를 잡아챘습니다. 저도 제가 그런 일을 당할 줄 몰랐어요.
근데 누구도 그런 일을 사고처럼 예기치 않게 각자 다양한 모습으로 살다 맞닥뜨릴 수 있습니다. 사소하게 혹은 갑작스레 크게 닥친 사회생활 속, 인생 사고를 당했을 때 누구보다 가까이 밀착해서 세심하게 봐줄 수 있는 '사회재활센터' 병원 같은 곳을 다양하게 늘리지는 못할망정 축소, 폐지하려는 지금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서울여성노동자회는 온전한 정신으로 버티긴 힘든 극한의 상황에도 저를 붙들어 주고 이끌었던 곳입니다. 사회적 원망 가득한 채로, 분노가 가득한 채로만 살지 않게, 아직 사회에 희망이 있다는, 정말 희망을 품고 다시 살고 싶은 의지와 행동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게 해준 인생병원이자 일상 사회 재활-복귀, 회복 센터인 이 곳이 계속 앞으로도 있을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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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글을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 미안함과 상담실을 '사회재활센터'라고 말해 준 고마움이 교차했다. 그녀가 상담받기 위해서, 서울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을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고용평등상담실이 필요하다

 

이제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이 폐지가 되면 또 다른 그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30분 상담받기 위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전국에 8개 지청 중 한 곳을 방문해야 하고, AI가 답변해 주는 것 같은 기계적 상담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연차 사용도 자유롭지 않은 작은 기업의 피해자를 지청이 밤늦게까지 기다려 상담을 해 줄까? 공공기관 종사자라면 행정기관인 지청에 피해사실을 쉽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지청에서 상담하는 사람이 진정, 고소, 재판 등에 동행하며 긴장한 피해자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지지해 줄 수 있을까?

 

고용노동부는 24년간 운영해 온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을 한마디 상의도 없이 폐지하겠다고 한다. 피해자 권리구제 방안도 없고, 제대로 된 정책방안도 없는 졸속 행정이다. 단지 민간에 고용평등상담실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만 있다.

 

힘없는 여성노동자는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사회적 약자를 대책 없이 내팽개치는 졸속행정을 당장 멈춰라!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신상아 활동가는 서울여성노동자회 소속입니다.

 

출처 : https://v.daum.net/v/202311171609036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