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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글] 코로나 19가 변화시킨 나의 삶,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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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전여민회 댓글 0건 조회 904회 작성일 20-06-3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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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가 변화시킨 나의 삶, 일상

 

 

“서울 총각아! 여긴 빛깔이 안 살지 않냐? 뜯고 다시 해봐. 최고로 좋은 색깔로 말이야. 강 양아! 거긴 청패*가 들어간 거지?”

사장님은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코치하고 독려하느라 83세라는 연세가 무색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움직이신다. 난 이곳에 10년의 공백 기간을 두었다가, 다시 취직한 지 겨우 한 달!

 

2019년 2월 23일부로 항상 마음속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어 아쉬웠던 마음이었는데, 이번 작품에 동참하게 되어 너무 행복하고 어떻게 마무리되어 나올지가 기대되었다.

난 이곳에서 자개를 만드는 부서지만 칠부(자개를 잘 붙이기 위해 나무표면을 사포로 평평하게 작업하는 일)일부터 해야 했고, 처음엔 어색하고 힘들었지만, 하나둘 완성해 나가다 보니 밑 작업이 완성되었다. 이젠 본격적으로 우리 기술자들의 손이 실력 발휘할 차례였다.

모두가 시간과 싸움이란 걸 알고 있어 밥 먹는 시간 외엔 오로지 작품에만 매달려야 했고 야간에 휴무까지 반납하면서 진행되었다.

 

2m 50! 정말 거대했고 처음이었다. 어떻게 완성될까? 흥분되고 기대감 가득했다. 20~30년 된 숙련공의 손은 참으로 놀랍고 신기했다. 10년 경력의 나는 아이에 불과했다.

자개 작업만 해도 6~7명의 기술자가 힘을 합쳐 작업했고, 4개월이 넘어갔다. 모두가 개인 생활을 접어둔 채 이 작업에 몰두해야 했고 나도 휴무까지 반납하면서 매달렸다.

드디어 완성되었다. 웅장하고 거대했으며 뿌듯함에 감정이 벅차올랐다. 이렇게까지 생각과 시간을 집중해 본 일이 없을 듯하다. 정말 사람의 손이 못 하는 게 없다는 말이 맞는 듯하다.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을 시간만 남은 것이다.

8월의 전시회를 마치고 일본 전시가 11월 예정되어 있어서 우린 또 그 준비로 바쁘게 움직였다. 9월 지나 10월이 지나가면서 상황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갔다. 일본과의 관계도 그렇지만 또 다른 복병이 나타난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코로나 19’. 어처구니없게도 상황은 안 좋게 변해갔다. 사장님도 그렇지만 우리도 점점 어려운 상황에 한 명 두 명 흩어지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나마저 ‘해고 처리’되었다. 좋아질 거라 믿고 기다려온, 월급마저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 달 두 달 좋아질 거라 믿었던 상황들은 우리 모두에게 그런 희망마저 품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퇴사 처리 후 난 무섭고 막막했다. 한 가정의 가장인 내가...

아이 셋을 생각하니 잠도 오지 않고 불안감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어떻게 해야 하지?

 

나 혼자만의 일이라면 분하고 억울할 텐데.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아파하는 이 상황에, 어찌한단 말인가? 버텨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예전의 그 유행하던 ‘페스트’ 때도 사람들은 이겨내고 견뎌내서 여태까지 살고 있으니 모두가 버텨내는 게 일이란 생각이 든다.

비록 마스크 쓴 사람들이 거리를 차지하고, 예전의 일상들이 그립고 지금의 생활이 어렵고 불편하더라도 모두가 같이 이겨내고 버텨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언젠가는 아이들도 친구들과 수다 떨고 싶을 만큼 떨고, 우리도 누굴 만나더라도 마스크 없이 편하게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을 마치 옛날 얘기하듯이, 하는 그런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시간이 흐르듯 우리도 맞춰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 강종숙 회원

 

청패(靑貝) : 안쪽을 잘 간 전복 껍데기. 자개의 재료로 쓴다.

 

 

▲ 강종숙회원이 작업한 자개의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