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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글] ‘사라진 그녀들’은 어쩌면 오늘의 우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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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전여민회관리 댓글 0건 조회 400회 작성일 20-06-3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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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그녀들’은 어쩌면 오늘의 우리일지도 모른다.

 

 

“민주항쟁에 있어 여성의 역사, 역할, 가려진 이야기를 써 주십시오.”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고 거절했어야 했다. 복동환활동가가 “지역민주화운동 역사나 민주시민 관련해 제가 아는 분이 선생님밖에 없어서요.” “아이고 이를 어째!” 전화기 너머 며칠 전에도 봤던 순진한(?)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감 시간이 언제예요?” “6월 29일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지역시민운동을 함께 연구한 경험, 그러한 연구와 정책개발을 통해 지역시민사회의 활성화와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고 제도화하는 역할을 자임했던 나였기에, 무엇보다 현재 날백수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처지에 후배활동가를 난감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민주항쟁기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청년으로서 항쟁에 함께 했던 경험, 이후 시민운동에서 오랜 기간 복무하면서 여성운동을 함께 거들었던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이다.

 

언제나 느끼는 바이지만 전국과 지역 민주화운동사에서 여성에 관한 기록은 그 활동과 영향력보다 충분하지 않다. 반독재민주화운동에서, 민주노조운동에서, 민주화 이후 2000년대 분화되고 전문화된 시민사회운동에서 여성들의 활동은 참 다양하게 펼쳐졌고 유의미한 성과들도 있었지만 젠더관점에서 통시적으로 기록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여성단체의 활동기록이 지역여성운동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도 이 글을 요청한 취지는 이런 한계 너머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지역여성들의 숨겨진 삶을 찾아내 기억할 수 있게 하라는 주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이후 이런 작업이 계속될 수 있게 하는 시초가 되지 않을까 한다.

 

글을 써야 하니 몇 가지 기록을 다시 봤다. 대전지역 민주노조운동사, 대전지역 민주화운동사, 지역사회운동역사와 대전여민회, 환경운동연합, 참여자치시민연대, 한밭살림생활협동조합 등 단체들의 20년사, 30년사... 참 많은 여성의 헌신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민주화운동의 부문으로 존재한 여성운동과 단체의 운동사로 정리된 여민회의 지역여성운동사를 제외하고 노동운동, 시민운동, 공동체운동에서 여성역할은 유의미하게 정리돼 있지 않았다.

 

우리 여성운동조차 지역의 여타 부문 여성리더십과 교류하고 연결망을 형성한 것이 2010년대 중반이었으니, 여성운동이 함께 다루고 키워야 할 부분으로서 지역여성들의 운동에 착안한 시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러니 이전 운동사에서 여성적 접근이나 여성들의 삶을 발굴하고 재정리하는 작업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나마 접근할 자료들을 가진 오랜 운동들과 운동의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여성들이 존재하는 지금이 일을 시작할 적기인 셈이다.

 

지역 제조업 노조운동의 경우 여성노동자 비중이 큰 노조가 있었고, 보건의료노조운동은 특히 여성노조원이 많았음을 상기할 때 이들 운동기록이, 기억이 여성의 시각에서 재정리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운동에서 소위 ‘여공’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재조명이 사회학계에서 한때 뜨거웠던 기억이 있다. 우리 지역의 노동(조합) 운동사에서 ‘발견’될 수 있는 ‘사라진 여성’들에 대한 시대의 기록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여성운동과 환경운동의 주춧돌이 됐던 기독교 여성운동, 여성학생운동도 마찬가지다. 70~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 제한된 공간과 영역에서 조용하게 진행된 그녀들의 활동이 비록 오늘날의 관점에서 부족함이 있었다 할지라도 가치 있게 기록되고 현양 돼야 마땅하다. 우리가 오늘 공동체 안에서 민주주의를 공고화하고자 하는 일들이 그녀들이 30~40년 전에 했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본다면 더욱더 그렇다.

 

민주화 이후 한 세대가 지나고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와 불평등구조는 점점 가혹해지는 사회적 재난 앞에 개인의 삶을 위태롭게 한다. 돌봄과 나눔, 배려의 여성리더십과 문화가 더욱 중요한 시대다. 더 넓게 ‘여성들’을 탐구하고 더 크게 ‘여성들’과 연대할 필요다.

 

- 김종남 (대전여민회 회원, 전 여성정치네트워크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