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대전여민회 여성주의 강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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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대전여민회관리 댓글 0건 조회 800회 작성일 21-11-24 17:18본문
백래시 시대를 넘는 페미니즘
(백래시, 반동의 핵심 전략)
11월 15일(월)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신남성연대의 시위가 있었다. 그 중 많은 수의 남성들은 여성가족부 홍보대사인 전효성을 비판하며 “전효성은 페미코인을 못탈거다.”라고 비난했다. 남자들은 왜 그렇게 전효성에게 분노했을까? 이유는 전효성이 여성가족부 홍보 동영상에서 “집에 가는 길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었다. 10~20대 남성들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에 분노의 버튼이 눌리는 듯 하다. 문제는 백래쉬 현상의 핵심에 여성에 대한 폭력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2021년 백래쉬 현상은 조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백래시는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며 미투와 강남역 사건을 통해 페미니즘이 대중화를 맞으며 이에 대한 반동으로 찾아오게 된 것이다.
2015년 전후를 기점으로 17살 김군이 페미니즘이 싫다며 IS에 가입한 사건과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하다는 칼럼리스트에 대항하여 SNS를 중심으로 “나는 페미니스트다”라는 선언이 있었다. 이와 더불어 2016년 발생한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은 우리 안에 이 사건을 여성혐오로 명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은 많다. 중요한 것은 왜 이 사건이 비슷한 또래 여성에게 공명을 울리는가? 왜 그들은 이곳에 나와 포스트잇을 붙이는가?이다. 20대 여성들이 굉장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고 이 감각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CCTV 보급이나 기술이 발달할수록 연간 살인사건 발생률이 떨어지면서 전체 범행 대상에서 여성 대상 살해 비율은 증가하고 있다. 치안이 강화될수록 치정 살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친밀한 관계의 사건 비율은 증가한다. 이전에 살인 사건은 여성의 문제가 아니거나 일부였다면 이제는 여성의 문제가 되었다. 강남역 사건은 20대여성에게 이것의 나의 사건이 될 수도 있다는 감각에서 붉어졌다.
2013년 대학 강의 때 여대 수업을 진행하는데 150명의 학생들이 모두 하나같이 머리가 길었던 적이 있었다. 마치 프로듀스 101에 나왔던 아이돌 지망생처럼. 한국사회는 젊은 여성에 대한 외모 압력이 어마어마한 나라다. 4주차에 이 수업에서 뚱뚱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성들의 다양성을 제재하는 압력이 강하게 존재하는 사회다. 외국에서 어학연수를 다녀와서 10키로를 찐 학생이 한국에 들어올 때 제일 먼저 하는 고민이 살을 빼고 들어와야 하는데 어떡하지?였다고 했다. 이러한 외모 압력은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억압의 양상에 동의를 통해 이루어진다. 나오미 울프는 그런 말을 했다. 20세기 여성들은 굶어죽었지만 21세기 여성들은 스스로 굶어 죽는다고. 2013년에 웬만하면 한국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여성들에 대한 압력이 강하게 지배하는 한국이 바뀔리가 없다는 생각의 결과이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감각은 변화를 수반한다. 강남역 사건은 이 순간 이것을 바꾸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감각이 혁명적 감각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각성수준이 집단적으로 일어났다. 그 정도 규모의 대중화 집회를 본적이 없다. 이렇게까지 주목 받아 본적도 없었다. 대중화된 페미니즘은 이전과 비교 할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올라갔다. 페미니즘의 대중화를 이야기 할 때 그동안은 100명중 1명꼴의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10명중 4~5명은 페미니즘에 동의를 하는 것 같다. 남성들 중에서도 10%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대중화라고 하는 국면은 운동자체의 성격을 바꾼다. 규모가 갖는 동질성을 갖기 힘들기 때문이다. 가장 문제적인 것을 페미니스트의 전부라고 믿게 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대중화라는 독특한 특성을 페미니즘이 2015년 한국에서 처음 맞게 되었다. 미국은 1970년대에 대중화가 찾아왔다. 68혁명이후 민중적 자각이 있었고 그 국면이 한국에서는 없었다. 한국은 7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이었고 신사회운동이나 시민사회운동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당시에는 페미니즘 대중화가 가능하지 않았다.
수잔 팔루디는 미국의 저널리스트로 미국사회의 페미니즘 백래쉬를 정의하며 레이건 시대를 비판했다. 레이건 정부는 페미니즘의 언어로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1980년대 레이건 정부의 중요한 슬로건은 가족 친화였다. 페미니즘 적이지 않은 정책을 여성을 위하는 것처럼 대치시켰으며(이것을 언어의 하이재킹이라고 한다)
“뉴라이트 남성들은 리더쉽 강령2-에서 20년간 시민권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는 언어의 장악을 둘러싼 것 이라고 주장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평등과 기회와 같은 단어가 중요했다. 법정에서든 의회에서든 승리의 비밀은 이런 용어의 정의를 장악하는 것이었다.(...)뉴라이트는 여성들이 새롭게 획득한 출산에 대한 권리에 반대하면서 여기에 ”생명친화적“이라는 표현을, 그리고 여성들의 대대적인 직업 시장 진출에 적개심을 표출하면서 ”모성 친화적“이라는 표현을 갖다 붙였다. 마지막으로 뉴라이트는 그들 자체, 그러니까 여성의 권리 신장에 반대하는 자신들의 퇴행적이고 부정적인 태도에 ”가족친화적“이라는 표현을 갖다 붙였다.”(수잔 팔루디 <백래시>, 373-375)
곧 이러한 속임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었다. 페미니즘은 그 동안 여성이 남성의 정의로만 존재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 여성이 시민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여성을 가족 안에 넣는다면 가족의 대표는 남성인 가부장이 될 수밖에 없다. 여성친화와 가족친화는 같은 말이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족법 개정운동은 가족을 공적·사회적·시민적인 것으로 바꾸려는 노력의 의미로서 중요하다. 레이건은 가족뿐만 아니라 낙태죄 담론의 정치적 변화도 시도했다. 인공임신중단 대신 생명 친화적, 모성 친화적이라는 이라는 언어를 차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수화, 가족화의 총합으로써 여성친화적인 것처럼 만들어 내는 것은 주요한 백래쉬의 전략 중 하나이다.
남자다움이란 무엇인가? 여자다움이란 무엇인가? 나라별로 남자다움에 대한 인식이 다를 수 있는데 북미와 유럽에서는 남성의 특징을 책임과 헌신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남자다움을 이야기할 때는 보통 강인함, 공격성, 능동성, 씩씩함과 같은 육체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한국은 육체성을 기반을 남성성을 이야기 한다. 이러한 남성성의 인식에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 이러한 인식은 식민지 남성성에 기초한다. 조선인 병사를 황군의 병사로 바꾸기 위해 몇 가지 전략을 세웠는데 육체와 관련된 자부심을 각성 시킨 것이다. 일본인에 비해 조선인 남성의 신체가 뛰어나다는 관련 잡지 기사를 많이 내기 시작했다. 근대 식민지 남성성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한국남성은 여성을 더 공격적이거나 제압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하나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현재 백래시 담론에서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은 젊은 남성들의 목소리이며 자신이 갖는 가부장적 권력과 좌절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고 이것이 폭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언제든지 폭력의 스위치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80년대 이후 페미니즘에 대한 대중적인 반동에도 불구하고 그것과는 별개로 법과 제도는 잘 정비되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백래시 담론이 한창이었던 2020년에 여성폭력 관련한 많은 법들이 통과되었다. 백래시가 반드시 여성운동을 후퇴시키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 성 불평등에 대한 동의나 페미니즘 반대가 공정의 힘으로 지지되고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고민거리이다. 총여학생회 폐지의 근거로 투표권과 관련한 민주주의 이름을 들먹이며, 성 평등 교육을 사상독재의 이름으로 반대하고 있다. 2021년의 백래시는 말이 안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말을 하는게 민망 할 정도이다. 대응 할 수 없는게 가장 큰 문제이다. 우리는 어설프지만 그럴듯한 말을 포스트 트루쓰라고 이야기 한다. 이것은 반만 맞는 진실이며 이러한 말들은 공론장을 망치고 있다.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굳이 여성들을 채용하거나 채용하지 않거나 하는 말들을 명문화 시키지 않아도 자동으로 여성들을 걸러낸다. 블라인드 면접에서 여성들이 많이 합격했다고 하더라도 자동적으로 탈락되는 시스템은 여기서 기인한다. 남성들이 가장 분노하는 것 중에 하나가 할당제인데 이러한 할당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적극적 조치는 누적된 차별에 대한 교정 조치이다. 젊은 남성들은 차별로 인한 특권을 내가 얻지 않았는데 내 또래 여성들이 나보다 공부도 잘했고, 수도 많은데(물론 이것이 여아낙태로 인한 결과라고 하더라도) 라고 생각하며 피해의식을 만들어낸다. 2010년 이후 소비자 정체성이 대중정서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여자를 일종의 재화로 생각하며 자신이 차지 할 수 없게 됨에 분노한다. 피해자 정체성이 남성성 형성에 중요한 대중감정으로 들어가게 되고 이러한 감정을 잘 공략해서 성공한 것이 트럼프이다.
페미니즘 대중화의 흐름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전 세계는 특히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디지털문명에서 앞서나가는 한국이 디지털 성범죄와 온라인 안에서 일어나는 여성혐오 현상도 앞서 나가기 때문이다. 인셀 문화를 알고 있는가? 인셀은 비자발적 독신주의자의 모임이다. 엘리엇 로저라는 백인 캐나다 남성이 있었다. 이 남성은 여성을 한번도 사귄적이 없었다. 이성을 사귀지 못한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이 자신을 만나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총기 난사 사건을 저질렀다. 이때 인기가 많았던 중국계 남성 2명도 함께 죽었는데 이는 백인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백인 남성의 특권 없음에 대한 분노로 볼 수 있다. 한국의 인남모(인기없는 남자들의 모임) 역시 인셀 감성이다. 루저 문화는 그냥 루저들이 자기들끼리 어울려 놀고 끝이다. 그런데 이러한 루저가 피해자가 된다는 것은 가해자가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피해들은 가해자를 제거하고 싶어 한다. 나를 여자들이 아무도 선택해주지 않았고 내가 선택받지 못하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며 그러한 구조에 여자들이 동조하는 것은 여자의 문제이다, 여자들은 돈 많고, 잘생기고, 잘나가는 남자만 좋아한다, 이런 놀라운 생각의 비화가 있다. 인셀 하위 문화 중에는 여자를 보면 소리 지르며 위협하는 문화가 있다. 얌전한 보스턴에서도 젊은 남성들이 지나가는 여성들을 위협하며 남성성을 과시한다. 그동안은 계층이동이 어려운 하층계급 남성들이 공유하는 문화가 공격적이지 않았다. 도시 중심 계층 이동이 어려워지는 하층 계급 남성들의 특징은 doing nothing이다. 아무 이유 없이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진입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저항적 남성이 되지도 못한 남자들은 그렇게 어슬렁거렸다. 그런데 요즘은 인셀 하위문화가 오프라인 문화로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현재 캐나다 경찰은 인셀 하위문화를 테러조직으로 간주하며 여성에 대한 공격, 약자에 대한 공격을 하는 단체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문화에서 사회나 국가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공격이 집중되는가? 주로 20-30대 여성에게 집중된다. 예쁘다고 얘기하는 것도 여성혐오래 라고 화를 낸다. 예쁘다고 부르는 것, 왜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야지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된 걸까? 묻는 것도 안된다. 우리 사회는 외모에 대해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야기를 듣는 사회이다. 외모 코멘트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 1위는 엄마이다. 여성의 외모 중요성을 끊임없이 말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외모 이야기는 계속된다. 어린애들도 선생님들 예쁜 거 너무 좋아한다더라 하는 식의....‘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공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해악을 끼친다.’ 라는 것이 교육된 나라 노르웨이에서는 누군가 외모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노르웨이에서는 학교에서 외모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공적자리에서 하는 것은 예의 없고 이상한일입니다.” 라고 단호하게 끊임없이 주입한다. 이런 문화를 상상하지도 못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어디서나 외모 얘기를 한다. 그런 곳에서 자아정체성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못생긴 사람들이 모욕 받는 문화. 여성혐오라고 하는 것은 폭력과 차별이랑은 다르게 문화적으로 일상화된 언어를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을 총칭하는 말이다. 외모나 성적으로 칭찬하는 것에도 여성혐오가 있다는 것은 각성한 페미니스트에게 여성혐오에 유용한 개념으로 작용한다.
여배우들이 나서서 “여배우라고 안했으면 좋겠어요. 배우를 누가 촬영장의 꽃이라고 하나요? 그렇지만 여배우들은 촬영장의 꽃이 되는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모든 것이 여성혐오에요.” 라고 이야기 하는 시대가 왔다. 여성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젊은 여성들 전반은 여성이라고 하는 이유로 어떤 외모에 도달해 있지 않으면 모욕 받아도 된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선택받은 남성으로부터 거절 할 때에도 “니까짓게 뭔데.” 하는 말을 들었어야 했다.
악어 프로젝트라는 책이 있다. 프랑스 만화가 토마마티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출판한 책이다. 프랑스 사회에서 여자 친구들과 길을 걸어가는데 길거리에서 남성들이 여성들을 향해 끊임없이 찬사를 보냈고 여자 친구들이 화를 내며 불쾌해 했던 경험을 토대로 기획이 시작되었다. “왜? 기분 좋지 않아? 프랑스 남자는 지나가는 예쁜 여자를 놓치지 않는게 프랑스 남자라고 배웠어”라고 물었더니 여자 친구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만약 그 남자가 나랑 정말 차 한잔을 마시고 싶었다면 길거리를 지나는 나한테 휘파람을 불지 않았겠지, 그런데 나한테 휘파람을 불었다는 것은 나를 개 같다고 느꼈다는 거야.” 그 말에 신선함을 느낀 토마마티는 이러한 종류의 찬사를 유심히 관찰하게 되는데 남자들이 지나가는 여자가 이민자거나 어리거나 취약해 보이거나 그런 경우에만 그런 식의 공격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길거리 괴롭힘이구나. 이런 걸 인식하게 되면서 폭력의 문제로 바꿔서 이야기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악어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 책은 가해자들은 전부 악어로 그렸지만 피해자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걸 보고 당시 프랑스 문화부장관이 “프랑스 문화에 대한 공격이자 남성에 대한 공격이다.” 라고 이야기 했는데 토마마티가 기뻐하며 “나의 의도가 드디어 먹혔다. 나는 남자로 그리지 않았다. 악어를 그렸다.”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이에 권김 선생님은 한국 편을 만들려는 시도를 했었고 사례를 수집했다. 이것을 토마마티가 수락했고 만화로 그리는 작업을 하는 중이었는데 토마마티가 갑자기 이 작업을 못하겠다고 했다. 이유는 한국의 길거리 문화는 만화로 그려서 알려주기에는 너무나 괴롭힘이었다. 여성들을 만지는 방식이 엉덩이를 만지고 튀고, 가슴을 만지고 튀고, 아니면 여성에게 쌍욕을 하고 가는 수준이었다. 이건 그냥 대놓고 범죄다. 이걸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냐?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라고 하는 것은 문화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정도이다.라고 이야기 했다.
여성이 남성에게 보기 좋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보기 좋지 않으면 모욕 받아도 되고, 보기 좋은 여성들은 받아주지 않으면 쌍년이 되는 수준. 거절 했는데 앞에서 쌍욕을 하는 상황. 니까짓게 뭔데 하는 화를 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여성이라고 하는 자기 의사결정이 남성의 특권을 침범한다는 생각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이 공격이 페미니스트에 대한 공격으로 더 좁혀지고 있다. 여성 전반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나진 않고 있다. 나쁜 페미니스트를 악마화 하며 페미니스트에 대항하여 공격한다. 그런 식의 경향들 안에서 백래시가 진행되는 것들이 보여지고 있는 추세이다. 나이 많은 40-50대 여성이 문제가 되지 않는데 걸 그룹 맴버가 페미니즘과 연관되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화를 낸다. 아이린한테 화내거나 전효성한테 화를 낸다. 그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분노 하는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정준영 단톡방 사건은 독특한 지점이 있다. 인셀 문화랑은 결이 다르다. 정준영과 승리는 그들이 여성을 유혹하는데 문제가 전혀 없다. 잘생기고 돈 많고 그야말로 영앤리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성을 강간하거나 강간한 상태에서 여성을 돌려보거나 그런 것은 충격이다. 그러니까 이 문제가 남성 전반에 걸쳐 해악적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어떤 위치를 막론하고 이런 폭력이 만연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여성혐오 문화가 정말 폭력적인 수준으로 만연해 있다는 것이 이에 대한 반발과 폭력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사실 20대 여성 연예인들이 페미니즘 옹호할 때마다 걱정이 된다.
누가 백래시 선동이 핵심일까? 언론과 정치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공론장에 대한 신뢰가 하락되어 있다. 뉴미디어 환경이 변화하고 있는데 큰 확성기를 만들어 계속 실어 나르고 있다. 선동가들이 그 역할을 해서 자기 지지자를 끌어 모으면 그것이 정치적 의견이 되고 있는데 주로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가부장제에 대한 대안으로써 페미니즘이 정책으로 제대로 실행되지 않은 잔여가 이런 식의 백래시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2008년도 금융 위기 이후에 인터넷 관련 공론장의 변화 중에 하나가 이명박 정부가 인터넷 관련 진흥법을 다 삭제한 것이다. 규제 관련 정책들을 다 풀어버렸다. 닷컴 기업들이 붕괴하고 2002~3년쯤 돼서 대기업 다 빠지고 2005년쯤 되면 엔지니어 기획자들이 무엇으로 돈을 벌기 시작 하냐면 포르노나 도박 사이트를 만들어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들이 중심이 되어서 인터넷 환경 자체가 엄청나게 포르노 그래픽화 되어 버렸다. 그런 인력들이 IT 기술과 관련된 돈벌이 수단으로 도박과 성매매 사이트로 연결되고 있다. 손정우가 초 6학년때 도박 사이트를 만들어서 돈을 벌었다. 아버지가 브로커였다. 웰컴투 비디오 사건 당시에도 손정우가 사이트 만들고 감옥에 갔지만 감형받기 위해서 아버지가 주선해서 국제결혼을 감행했다. 그 관련 사이트 서버가 다 캄보디아에 있다.
한국 사회 인터넷 산업과 관련 성착취 구조가 2005년부터 만들어진 역사가 있다. 2007년쯤 되어 규제책이 다 없어졌다. 네이버 이런데서 한 언론사마다 한 달에 백 개 이상의 기사를 생산하지 않으면 계약을 안해주게 되었다. 뉴스 생산과 관련해서 편집권을 갖게 되면서 뉴미디어 등 눈길을 끄는 클릭 수 중심으로 기사들이 선정화 상업화 되었다. 젠더갈등으로 장사하고 여자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성폭력 기사도 굉장히 자세하게 하게 되었다. 2008년 KBS사장이 직접 성폭력사건을 자세히 보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불필요한 선정적 보도지시였다. 그렇게 사건 보도의 방식도 바뀌게 되었다. 그림자와 재현 등의 방식으로 전반적인 미디어 환경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선정성과 구분하지 않고 향유하게 되었다. 상업적 목표로 그것을 내세워서 익숙하게 만들었던 문화가 2008년부터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그런 식의 광고들이 붙어 있었다. 그런 광고들이 이제 없어졌는데 그게 페미니즘이 해왔던 일들이다. 그런 환경에 우리가 공기처럼 익숙해졌었다. 환경 자체가 눈만 돌려도 여자를 다 구멍으로 보는 그런 문화에 노출되게 했다. 2008년부터 10년 동안 인터넷 환경이 이랬다. 뭐라고 얘기했냐면 그 모든 것들이 표현의 자유문제거나 성관련 성매매 불법국가에서 유일하게 표출 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긍정적으로 이야기 하거나 문제 자체를 이해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 환경이 바뀐지 얼마 안됐다. 굉장히 빨리 바뀐 것이다. 페미니즘 때문에.....
경제위기가 큰 역할을 했다. 2008년도 40대 남성 가장들과 10대 남성들이 일자리를 잃어버렸다. 10대 남성이 했던 일들에는 자동화 기기가 등장하게 되었다. 셀프 주유소와 같이. 10대 남성들은 이후 PC방에서 오랫동안 지내게 되었다. 온라인에서 중고거래를 하게 되고 핸드폰과 관련한 거래를 하게 되었다. 이런 온라인 기반의 경제 변화와 관계가 깊다. 가부장제가 안정적으로 재생산 될 수 없다고 생각한 10~20대 남성들이 온라인에서 살게 되었다. 그런 남자들이 모두 게임을 하는데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임 금지도 여성가족부가 한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셧다운제를 없앤 것은 중요한 변화이기도 하다. 문제를 만들어 내는 구조를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가야한다. 젠더갈등으로 이야기 하는 어떤 것들은 계급갈등이다. 그런 종류의 프레임에 넘어가지 않고 실제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제대로 보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일이다. 페미니즘 내부 목소리에서 어떤 부분은 비판을 통해서 정화되어야 할 것들이 있다. 일종의 반성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해와 변화의 방식으로 백래시를 다루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여성주의 강좌를 열심히 들은 이은주 활동가가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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