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수요문화제> '위안부' 운동 30년, 굳건히 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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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대전여민회관리 댓글 0건 조회 887회 작성일 20-06-29 16:36본문
제33주년 6.10.민주항쟁 대전 기념식과 함께 진행한
지난 6.10. 수요문화제에서
최영민 대전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평화나비대전행동 공동대표가
발언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제목은 '위안부' 운동 30년, 굳건히 이어가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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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한국정대협의 결성과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최초 증언 이후 지속되어온 '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은 지난 5월 이용수 할머니의 두 차례의 기자회견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대한민국 여성들이 일으킨 가장 대표적인 여성인권운동이며, UN인권조약을 바꾸고 성노예제라는 개념을 만든 '위안부' 운동은 '위안부'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30년의 운동과정 안에서 스스로 성장해왔고, 그 중심에 정대협과 정의연이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간 여성들의 피해증언을 기록하고, 가난한 식민지 여성들이 경험한 전시성폭력의 문제를 여성 개인의 잘못이나 수치가 아니라 제국주의와 식민지, 전쟁, 내셔널리즘으로 옭아맨 구조적 성폭력 문제이며, 반인륜적인 여성인권침해의 문제임을 피해자에게 각인시켰고, 한국사회에 환기시켰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존재를 부인하던 당시 일본 정부수상의 방문에 항의하기 위해 1992년 1월 첫 시작된 수요시위는 지금까지 1442회를 이어져 왔습니다. 수요시위의 의미는 이제 침묵을 강요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경험과 연결되어 있고, 서로 힘을 주고받는 인권운동과 교육의 장이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평화운동이 지속될 수 있었던 건 피해자에서 생존자로 다시 인권운동가로 스스로 삶을 전환해온 할머니들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용수 할머니도 이분들 중에 한분이십니다. 이용수 할머니는 평소에 ‘위안부’로 호명되는 것도, 바람직한 ‘피해자’로 남아있는 것도 거부하고 이용수로 불려지길 소망했습니다. 금번 기자회견에서 격앙된 언어로 정대협과 정의연을 비판하고 다시 자극적인 언어도 있었지만, 이용수 할머니의 분노 뒤에 가려진 진위는 과거 운동방식을 평가하며, 발전적이고 지속가능한 여성인권운동의 방향을 모색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달랐습니다. 자극적인 언어만 부각시켰고 어떻게 운동을 재구조하고 지속할 수 있는가 하는 아젠다를 상실한 채 의혹보도를 남발했습니다. 30년 여성인권운동을 폄훼했습니다. 덩달아 극우 인사들이 ‘위안부’를 짓밟는 망언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마치 ‘위안부’ 정의로운 해결의 지연이 정대협과 정의연이 탓 인양 호도하고, 정대협과 윤미향 전 대표가 운동을 독점하고, 피해자를 운동의 주체로 성장시키지 못했다는 책임과 비판까지 난무합니다.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의 주체는 정대협이 아니라 정부입니다. 피해자가 직접 일본정부에게 사죄하고 배상하라는 외침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나서서 일본정부와 싸웠습니다. 시민의 힘이 더해져 2011년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 한국정부의 부작위는 위헌이라 대법원의 결정을 얻어냈습니다. ‘위안부’ 문제가 한일 간의 외교 현안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하도록 한 배경에는 정대협과 정의연 그리고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로운 세상을 원하는 깨어있는 시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30년 이상 지속되어 온 ‘위안부’ 문제 정의로운 해결운동의 역사가 이렇게 쉽게 부정되고 폄훼되어선 안 될 것입니다. 가난한 식민지 여성들에게 가해진 집단적, 구조적 성폭력을 젠더 개념으로 재구성하고, 전 세게에 공론화한 일 나아가 안보 패러다임을 여성안보로 확장시킨 자랑스러운 한국여성인권운동으로 기억하고 지켜가야 할 것입니다. 2020년 우리 내부의 ‘위안부’ 운동에 대한 문제 제기가 ‘위안부’ 운동을 성찰하고 보완하는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 의무와 책임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공동체의 노력과 기여로 ‘위안부’ 운동이 새롭게 구성해갈 역량이 우리 안에 있음을 신뢰합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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